매일신문

최재왕 기자의 방북 동행 취재기

서울~평양 불과 3시간…고분같은 민둥산 인상적

2007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본대와 수행원들은 지난 2일 새벽 대형 버스 8대에 나눠타고 노무현 대통령보다 2시간 먼저 청와대를 출발했다. 평양에서 있을 공식환영식 취재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육로 방북이자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상징성 때문인지 분위기가 다소 들떴다.

◆가는 길=도라산에서 출경 심사를 끝내고 버스가 출발했다.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노란색 띠가 눈에 띄었다. 입경 심사가 끝나자 북한 안내원이 버스에 탔다. 안내원은 평양 상황을 묻자 "기대해도 좋다. 서울서 아는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어쩌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환영식에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했다.

평양으로 버스가 출발한 것은 오전 8시 42분. 개성공단을 지나 개성시에 들어서자 길 양쪽에 사람들로 넘쳤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여성들, 양복을 입은 남성들, 때때옷을 입은 어린이들. 평소 출근길 모습일까 아니면 정상회담 때문에 연출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개성~평양 고속국도로 버스가 접어들었다. 왕복 4차로 폭의 콘크리트 포장길인데 차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미뤄 아직 차량이 많지 않아 왕복 2차로로 쓰나 보다 하고 짐작했다. 흐린 하늘에 안개가 짙어 시계가 좁았지만 들녘에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코스모스와 들국화 등 들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 북녘의 가을 정취가 물씬하다. 경주의 고분군을 연상시키는 민둥산이 인상적이다. 땔감을 때기 때문에 산에 나무가 없고, 그래서 큰 비를 만나면 피해가 커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평양까지 160㎞. 산이 가로 막으면 터널을 뚫고, 강이 마주치면 다리를 놓아 단 한 곳도 구부러진 곳이 없는 곧게 난 길이다. 도로 곳곳은 땜질이 되어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아 버스가 심하게 덜컹댔다. 낯선 북녘 땅의 파노라마에 취재진들은 개성에서부터 한동안 눈을 부릅떴으나 새벽잠을 설친데다 가도가도 비슷한 풍광이 이어지자 하나둘 잠에 묻혔다.

◆평양 거리, 평양 사람=개성을 출발한 지 정확히 2시간 만에 평양 초입에 도착하니 조국통일3대 헌장 기념탑이 버티고 섰다. 당초 공식환영식 장소로 예정됐던 곳. 하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고 대동강을 건너고 인민문화궁전을 지나 4·25문화회관에 멈췄다.

서울에서 불과 3시간이면 닿는 평양이건만 우리 대통령은 50여 년 만에 한번 왔고 또 7년 만에 한번 왔다.

길 양쪽은 꽃을 든 사람의 바다. 언제부터 모였는지 알 수 없는 수십만 명을 헤아리는 평양 시민들이 혹은 서고 혹은 앉아서 질서 정연하게 노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평양 성인이 모두 길에 모인 느낌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노 대통령이 광장에 도착하자 군악대에 맞춰 군중들은 '만세'를 외쳤다. 수만 명의 몸짓과 함성에 한점 티끌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마치 기계같이 일사불란한 사람들의 모습에 기가 질리지만 이것이 평양 사람들의 손님을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니 사람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평양 거리는 한산했다. 신호등은 작동되지 않고 '평양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 교통보안원이 수신호로 간간이 지나는 차량을 정리하고 있다. 단독 주택이 거의 없이 아파트 등 고층 빌딩으로 즐비한데 최근 들어 빌딩이 많이 늘었다고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한 사람들이 전했다. 국영으로 손님이 거의 없는 상점들도 네온사인을 달았다. 가로수에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조명도 했다. 소설가 조정래 씨는 이를 두고 '10월의 크리스마스 트리'라며 감격했지만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인지라 정상회담 때문에 불을 밝혔으리라.

평양 여성들의 옷 색깔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북한 전문가들은 평양 여성의 옷 색깔에서 북한의 변화를 감지한다. 평양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위대한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 등 붉은 글씨로 주요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격문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예측 불가능한 평양=취재단의 숙소인 고려호텔의 프레스센터는 통신·통화·통행이 마비된 단절의 장소였다. 남북 실무진의 합의에 의한 것이기는 했으나 인터넷이 되지 않아 들고간 노트북은 워드프로세서로만 사용됐고, 호텔 밖 출입도 엄격히 통제돼 길 하나 건널 수조차 없었다. 호텔에 갇혀 답답해진 취재단은 서로 행사 취재를 하려고 경쟁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일정도 수시로 바뀌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행사는 시간과 장소가 들쭉날쭉했다. 북한 인민들의 신앙의 대상에 가까운 그이기에 취재 편의는 애초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2박 3일간 취재진이 김 위원장의 육성을 단 한 차례도 취재할 수 없었다. 북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위대한 김정일 위원장님의 육성이 공개된 적이 없다."며 "2000년 정상회담 때 육성은 비공식적 자리였다."고 주장했다.

취재 펑크도 다반사였다. 공식환영식에서 기자들의 접근 취재가 허용되지 않아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했고, 공식환송식에서 방송 기자들이 버스에서 내리지 못해 현장 리포트를 하지 못했다.

평양 시민들은 평양의 인구 수를 정확하게 모른다. 2명의 안내원은 하나같이 질문에 '잘은 모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200만 명쯤 될 것이다.", "250만 명쯤 될 것이다."고 했다. 호텔 여종업원은 아예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안내원은 350만 명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리랑 공연=능라도 5·1 경기장. 취재단과 수행원들은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폭발물 검색을 당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무검색은 외국 순방 때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10만 명을 웃도는 평양 시민들도 아마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았을 게다.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행사는 장소까지 바꾸며 신변 안전에 힘쓰는 것에 견줘보면 씁쓰레하다.

아리랑 공연은 소문대로 거창했다. 학생과 어린이 10만 명이 1시간 30분 동안 벌이는 집단 체조 등 각종 공연을 보며 13만 명의 관람객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특등석에 앉은 방문단의 반응도 다양했다. '감동적이다.' '아름답고 장엄하다.'는 사람도 있고, '섬뜩하다.' '공연자들이 불쌍해 가슴이 아린다.'는 사람도 있었다.

현란한 카드섹션과 수만 명의 실수 하나 없는 섬세한 공연에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느꼈을 게다. 또 빈자리 하나 없이 관중을 가득 채우고, 인공기나 고 김일성 주석이 표현되면 우레같이 터지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섬뜩함으로 전율했을 게다.

같은 상황을 두고 소감이 다른 것은 비단 아리랑공연뿐만 아니다. 두 번째 평양을 방문한 소설가 조정래 씨는 "평양 시민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정이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초행인 도올 김용옥 선생은 "평양 사람들을 보면서 통일을 위해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했다.

◆돌아오는 길=환송식이 열리는 인민문화궁전으로 가는 길 양쪽에 환송을 준비하던 평양 시민들이 서성이다 손을 흔든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 담겼다. 정상회담 결과에 그들이 만족한 모양이다. 마치 산보 나온 사람처럼 삼삼오오 움직이지만 동원이란 것을 취재단도 이젠 한눈에 안다. 인민문화궁전에서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까지 수㎞에 사람들이 늘어섰다. 방과 후여서인지 환영 길에 보이지 않던 학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평양에서 개성으로 돌아오는 길은 밤길. 평양에서 조금 떨어지자 버스가 아무리 달려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네온불 가로등으로 환해졌다. 퉁퉁 튀던 길도 매끄럽다. 우리은행과 패밀리마트가 눈에 띈다. 바로 개성공업지구다.

평양에 한번 다녀오고 평양을 안다고 하면 큰 오산이라고 한다. 평양만 보고 북한을 봤다고 하면 더 큰 착각이라고 한다. 화려한 개성공업지구를 보면서 '개성공업지구가 통일의 징검다리인 민족의 미래'라는 공단 관계자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평양을 처음 다녀온 기자의 또 다른 착각일까?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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