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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42번가의 기적- 타임스퀘어의 몰락과 부활

42번가의 기적- 타임스퀘어의 몰락과 부활/ 제임스 트라웁 지음/ 이다희 옮김/ 이후 펴냄

뉴욕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히 바쁜 일정이 없는 한, 아니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하더라도 반드시 브로드웨이를 들러 뮤지컬을 감상하고, 인접한 42번가를 거닐면서 벌거벗은 카우보이와 길거리 화가, 노숙자, 건물 자체가 거대한 광고판으로 뻔쩍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새롭고 신선하며 충격적인 뭔가를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설레면서….

타임스퀘어(1904년 4월 8일 뉴욕시장 조지 맥클릴런은 42번가와 브로드웨이 주변 지역을 롱에이커스퀘어가 아닌 타임스퀘어로 부르기로 선언했다)는 뉴욕의 중심이자 미국의 중심이며 세계의 심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뉴욕 42번가는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때로는 애정을 기울여 재설계한 도시공간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르러 42번가는 더럽고 병적인 곳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이전의 시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혼란스럽고 비뚤어진 뉴욕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잠깐 타임스퀘어 100년사를 되짚어 보자. 타임스퀘어의 의미는 대중문화와 함께 진화했다. 20세기 초 타임스퀘어는 남자들이,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여자들이, 빅토리아 시대부터 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했던 도덕적 규범을 벗어던지기 시작한 곳이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갑작스런 경제성장에 뒤따라 도회적 교양과 기지, 금주법에 대한 아찔한 반란의 전국적인 무대가 됐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대공황 굶주림의 문화 속에서 번영했던 사기꾼들과 자기 신화화의 전문가들,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들의 고향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놀이 공원 분위기의 타임스퀘어는 해군 병사와 군인, 사격장, 핫도그와 값싼 구경거리, 스윙과 비밥리듬으로 가득 찼다.

1970년대에도 타임스퀘어는 그 무언가를 상징했다. 바로 도시의 와해다. 그리고 뉴욕 사람들이 타임스퀘어에서 마약과 섹스 산업을 걷어내고 42번가의 전성기를 회복하자는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무려 30년이 걸렸다.

도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재개발 논의가 시작될 때 시의 입장, 개발업자들의 논리, 시민들의 반응까지 세세하게 서술했고, 부동산업자들의 이해득실과 개발 이후의 청사진에 대한 갖가지 가능성까지 모두 이 책에 실었다. 이를 위해 브로드웨이의 증인들, 다시 말하면 연극 연출가, 거리 예술가, 시 공무원, 간판 제작자, 노숙자, 웨이터 등과 인터뷰하는 데만 꼬박 1년을 보냈고, 도서관에서 또 1년을 보냈다.

이 같은 노력 덕택에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는 타임스퀘어 이야기는 나이트클럽과 극장의 시대였던 1920년대와 1930년대를 지나고 1960년대 섹스 산업의 메카로 떨어졌던 쇠퇴기를 지나 눈부신 재개발이 이루어진 1990년대까지 숨가쁘게 전개된다. 뉴욕 사람들이 사랑하는 타임스퀘어에 대한 태도가 어떤지, 그들이 42번가의 분위기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도 알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성공적인(?) 타임스퀘어 재개발 방향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뉴욕이나 도쿄, 파리, 뭄바이 등 대도시를 사람들이 찾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것을 즐기러 온다.'는 것. 때문에 재개발 과정에서 지역 특수성과 개성이 없어진 것에 대해, 골목길과 아주 작은 마을들이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타임스퀘어 몰락과 부활의 역사는 대구에도 적잖은 교훈을 던져준다. 동성로를 중심으로 400년 이상 영남의 중심지였던 대구도심에 대한 재창조 논의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차원에서 도심공간에 대한 고민은 1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시정부와 지역연구기관인 대구경북연구원, 시민단체들이 함께 고민을 시작한 것은 올해가 원년이 아닐까 싶다. 브로드웨이와 42번가 없는 뉴욕을 생각할 수 없듯, 동성로를 비롯해 역사와 숨결이 담긴 도심공간 없는 대구를 생각하기 어렵다.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은 대구 도심공간에 대한 재창조 논의와 노력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오랫동안 전개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압축성장에 익숙한 우리라면 뉴욕이 30년 걸린 일을 3년 정도에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효율성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일까? 496쪽, 2만 3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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