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31년 만에 와 본 대구

지난해 9월 대구 문화예술회관장으로 일하기 위해 대구에 정착한 것은 1975년에 대구를 떠난 지 31년 만이었다. 예로부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사람 사는 세상은 더 많이 더 빨리 변한다는 의미이다. 우선 대구도 참 많이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범어네거리의 새로운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 특히 들안길의 음식점들은 대구음식이 맛이 없다는 말을 완전히 무색하게 했다. 엑스코와 인터불고호텔이 없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을지 선견지명을 가진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고, 오페라 하우스는 대구시민들이 IMF와 여러 가지 사고로 시름에 젖어 있을 때 희망의 등불이었다. 2011세계육상경기대회 유치로 대구는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까지 잡고 있다.

이렇듯 많은 변화 속에서도 나를 옛날의 추억 속에 묶어두려고 하는 것들이 있었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히말라야시더의 늘어선 모습은 대구의 변하지 않은 모습 중 으뜸이 아닐까 싶다. 더 좋은 것, 혹은 파격적으로 좋은 것을 갖기 원한다면 필요 없고 나쁜 것만 버릴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좋아하던 것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필요 없는 것이나 누구나 싫어하는 것을 바꾸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별로 싫어하지 않고 그리 나빠 보이지도 않거나 심지어 지금 당장 좋아 보이는 것조차 바꾼다는 것은 보통의 안목을 가지고는 어렵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문화예술회관의 화장실이 네 개 중 한 개가 현대식 양변기이고 나머지 세 개는 재래식인데 처음 직원회의 때 개선하자고 했더니 '옛날 것이 더 좋은데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후 시의회와 시청 화장실을 일부러 들렀다가 깜짝 놀랐는데, 거기도 양변기와 재래식이 문화예술회관과 같은 비율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구 문화예술회관은 담장 허물기 공사가 한창이다. 담장 허무는 것이야 무엇이 어렵겠는가마는 아직도 그 마음들이 옛것에 사로잡혀서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담장 허물기가 담장 새로 쌓기가 될까 심히 겁이 난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들은 우리 것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시대의 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의 사람은 나의 기준 나의 안목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새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봐야한다. 이제는 경험이 많은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박명기(대구문화예술회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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