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얼리어답터' 이긴 '슬로우어답터'

닌텐도DS 성공·소니PSP 실패로 본 트렌드 변화

2004년 출시된 소니의 PSP와 닌텐도의 닌텐도 DS(이하 DS). PSP의 우세를 점치는 견해가 많았지만 결과는 '싸고 쉬운' 게임을 표방한 DS의 압승.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던 모바일 게임기의 실적이 엇갈렸다.

#광풍처럼 몰아치던 미니홈피 열풍이 진정되는 대신 마이크로블로그라는 신종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지인들과 소식을 나누어야 하는 미니홈피 대신 마이크로블로그는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된 즉흥적 감상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초미니 블로그의 시대로 변한 것.

#2~3개월 만에 짧은 라이프사이클이 보통이던 모바일 게임 업계에서 2년간 500만 건이 다운 로드된 롱런 베스트셀러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스타 크래프트나 리니지와 같이 근사하고 전문적인 게임이 아니라 버튼 하나만 조작하면 되는 원 버튼 방식의 단순한 게임.

새 기술에 열광하고 매니아적 감성을 가진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식 소비가 주춤하는 사이, 일상적인 즐거움과 대중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소비층이 부상하고 있다. 얼리어답터와 달리 단순하고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슬로우 어답터(Slow Adopter)가 새 경험과 서비스에도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뜨고 있는 것.

◆히트 코드는 '단순함'

모바일이나 웹을 기반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및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대중화되면서 업계 승자의 요건도 변화하고 있다. 기술적 우위나 섬세하고 치밀한 서비스, 스케일의 방대함 등이 중시되던 과거에 비해 최근 업계에서 주목받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놀랄 만큼 단순하고 가볍다.

DS는 PSP에 비해 기기의 가격도 싸고, 콘텐츠의 내용이나 기기 조작도 PSP보다 훨씬 쉽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게임을 하기 위해 고가를 지불하는 것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싸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대중 소비자의 기호를 정확히 읽은 닌텐도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 DS가 PSP를 누른데 대해 가격차이를 주원인으로 들지만, 지난 4월 PSP가 기기 가격을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판매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트위터, 일본의 모고모고, 한국의 미투데이나 플레이톡 등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줄짜리 블로그인 마이크로블로그는 미니홈피를 업데이트하고 꾸미는 데 필요한 근면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이크로블로그는 해당 웹사이트에 즉흥적인 기분을 올리거나 타인의 기분에 공감하는 댓글을 달면 그만이다.

LG 경제연구원 손민선 선임연구원은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된 게임들이 지극히 단순 반복적이고 가벼운 게임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모바일 게임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늘수록 고스톱이나 테트리스, 돌 던지기 등 기존에 잘 알려졌거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게임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슬로우 어답터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는 게으르다.(비몰입의 즐거움)

이들의 성공 비결은 분명하다.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마니아 중심이라서 거리감을 느꼈던 소비자들의 틈새를 파고들었다는 점. 이제까지 주소비층이 아니었던 비고객 즉 여성이나 직장인, 중장년층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쉽고 간단함'이 대중화 코드였던 셈이다.

5년째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즐기고 있는 회사원 박병호(45)씨는 "언제나 바쁜 일상 속에 묶여 있기 때문에 무언가에 장시간 몰두하기에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단순하고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게임이나 IT서비스에만 눈길이 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IT 업계가 관심을 가져왔던 선도 소비자는 얼리어답터들이다. 이들은 신기술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전문가 못지 않은 제품 지식을 가지고 있어 기업의 제품 기획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소비자로 알려져 있다. 제품을 개발한 기업도 알지 못하는 문제점을 발견해 낼 정도로 집요하고 제품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소비자들이다.

그러나 얼리어답터의 기호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향이 흔하다. 전형적인 얼리어답터형 제품이었던 PSP가 대중화되지 못하고 애플이 야심 차게 내놓은 아이폰(iPhone)도 기대 이하다. 아이폰의 경우 출시 후 초기 판매량이 50만대에서 70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 판매량은 27만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애플의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IT 업계에 부상하는 새로운 소비 주역

빠르게 기술이 변화하고 새로움 자체를 미덕으로 하는 제품이 빠르게 쏟아지는 시장 초창기에 10대 후반 소비자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러나 시장이 확대되면서, 취향은 대중적이지만 구매력은 더 높은 20대 후반, 30대 소비 계층의 부상이 더 두드러진다.

최근 국내 시장의 경우 30대 남성의 DS 구매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자신이 사용하려는 목적이다.

이러한 추세는 IT 업계 곳곳에서 감지된다. NTT 도코모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대 후반 여성이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의 핵심 고객으로 부상했다. 10대 후반 여성이 주류였던 초기와 달리 20대 후반 여성의 콘텐츠 이용 빈도가 더 많으며 구매 성향도 높다는 것. 전문가형 카메라인 DSLR 시장도 독신 여성과 젊은 아빠를 타깃으로 한 가볍고 사용이 간편한 경량형 제품을 출시하면서 빠른 성장 가도에 접어들고 있다.

통계청이 2006년 발표한 국내 인구통계자료를 보면 얼리어답터에 해당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소비자는 688만 명에 불과한 반면 슬로우어답터에 해당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소비자는 천만 명에 육박한다. 슬로우 어답터가 얼리 어답터보다 더 매력적인 소비자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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