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는 철밥통'이라는 통념을 깨기 위한 대학 내부의 변화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최근 정년보장(테뉴어) 심사에서 교수 15명을 무더기 탈락시킨 것을 비롯해 대부분 대학들이 승진과 정년에 관한 심사 기준을 갈수록 엄격히 하는 추세다. 교수가 되기만 하면 정년까지 보장된다는 공식이 점차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KAIST에서 본격화된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대단히 호의적이다. 내부 역풍을 주의해서 사회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조언도 곳곳에서 나온다. 그러나 지원에 비해 과도한 성과 요구, 교육보다 연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 정치적·행정적 걸림돌 등 주변 요소들을 정비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KAIST의 시도와 의미
KAIST에서 화제가 된 테뉴어 심사란 임용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연구 성과 등을 심사해 이를 통과한 교수에게 정년을 보장해 주는 제도다. KAIST는 1971년 개교 이래 이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지만 그동안 탈락자가 한 명도 없었던 점에 비추어보면 이번 결과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평가도 나이나 서열, 호봉 등을 배제하고 연구 성과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하니 그동안 교수 사회를 손가락질하던 여론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KAIST의 이번 시도는 최근 몇 년 동안 정년, 승진 등의 심사에서 요건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던 대학에 비해 규모나 기준의 엄격함 등에서 획기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여타 대학들이 충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동참할지 관심을 끈다.
일단은 그동안 대학에 쏟아져온 비판들을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출발은 객관적인 경쟁력 지표다. 지난해 미국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에 한국 대학은 하나도 들지 못했으며, 영국 '더 타임스'의 평가에서 서울대가 63위에 올랐을 뿐이다.
이같이 낮은 경쟁력의 가장 큰 원인으로 교수 사회의 이기주의와 무경쟁 시스템이 꼽힌다. '교수 사회는 폐쇄적이고 대학 시스템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 무엇보다 경쟁체제가 없다 보니 교수에 대한 실질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외국 대학에선 20~30%의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하지만 우리는 한번 임용되면 정년까지 보장되는 게 교수 직업으로 인식된다.'
국립대 법인화나 대학 특성화 등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국립대를 법인화하면 능력별 대우의 격차를 더 늘릴 수 있는데도, 교수들은 공무원 신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법인화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대학들이 학교별 특성화를 외치지만 잘 안 되는 이유도 특정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를 통폐합하는 데 대해 교수들의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평가와 재임용, 승진 등에서 엄격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오래된 것이다. '부실 교수들이 퇴출되지 않는 것은 대학들이 재임용 심사를 봐주기식 요식행위로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교수사회의 무사안일주의는 고인 물은 썩는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해 왔다.'(이상 신문 사설)
▨대학 개혁 성공의 관건
KAIST의 선도적인 개혁이 아무리 여론의 주목을 받는다고 해도 역풍으로 인해 일과성으로 그치거나, 내부 혁신 정도에 머물 수 있다는 걱정도 많다. 역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위에서 도우면서 대학사회,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지적은 소홀히 할 수 없다. 열심히 하는 교수 못지않게 경쟁력 낮은 교수가 많은 대학 구조상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낼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KAIST의 실험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우리 사회 전체의 동참이 없으면 자칫 찻잔 속 폭풍으로 끝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말로만 칭찬하는 척할 뿐 실천으로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하기 위해선 평등주의라는 고질병부터 깨야 한다.'(신문 사설)
개혁을 이끌 총장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이른바 중앙집권제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비유하자면 서울대는 거대한 항공모함이다. 교수 2천명, 직원 1천명, 학생 3만 명이 탑승한 항공모함이 방향을 틀려면 엄청난 힘이 가해져야 한다. 함장 격인 총장과 항해사·갑판장·승무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항로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각 학문 영역에서 맹주를 자처하는 2천명의 교수가 고분고분 따를 리 만무하다. 합의보다는 논쟁을 더 좋아하는 게 교수들이다. 개인 경력과 직결된 사안이 아닌 한 교수들은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왕국을 차린다.'(신문 칼럼)
규모가 작고 교수 집단의 동질성이 높은 KAIST나 포스텍의 경우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여지가 있다고들 하지만, 역시 고민은 있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총장 직선제가 한국에서 강력한 테뉴어 제도가 시행될 수 없는 큰 원인"이라며 "총장이 교수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환경에서는 교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수 간 파벌과 반목, 논공행상식 보직인사 등 직선제의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대학들이 새겨들어야 할 직언이다.'(신문 사설)
교수사회에서는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연구할 여건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KAIST의 실험이 우리나라 대학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충분한 연구비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KAIST의 이번 테뉴어 심사에 뒷말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것도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연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대학들이다.'(신문 칼럼)
▨우려되는 점들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러 장치들을 도입하는 건 좋지만 당장 우려되는 상황은 여러 가지 예상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이른바 개혁 역풍은 무시해도 좋으나 합리적인 우려는 새겨들어야 한다.
먼저 평가의 공정성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 '임용과 재임용의 혁신이 교수사회의 경쟁유도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학별·학과별 특성에 맞게 신중하고도 섬세한 메스가 요구된다. 기준과 평가가 공정해야 하며, 연구 성과를 중시해 강의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교수의 부담을 덜기 위해 연구중심 교수와 강의중심 교수로 구분해 임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학문의 뿌리가 다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신문 칼럼)
때문에 정년 보장에서 탈락한 교수들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제공되는 시장 유연성도 필요하다. '테뉴어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라고 해서 그대로 퇴출·매장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교로 얼마든지 옮겨 갈 수 있는 사회적·학문적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 스탠퍼드대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진 조교수들은 미국 내 20위권에 드는 대학으로 한 계단 낮춰 옮겨가는 것이 통례다. 옮겨가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고,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진 교수라는 낙인을 찍지도 않는다.'(신문 칼럼)
평가에만 신경 쓰다 보면 연구와 함께 대학 고유 기능인 교육에 소홀해지는 경향을 낳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우려가 적잖다. '연구뿐 아니라 교육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려야 한다.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대학은 연구보다는 교육기능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연구기능만 일방적으로 강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긴 하지만,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희생시키고 이루어지는 연구업적의 양산은 대학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전략이 되지 못한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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