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기행)청평사 가는 길-윤대녕의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①

청평사 가는 길에 만나는
청평사 가는 길에 만나는 '공주와 상사뱀' 조각물.

소양강 댐이 만들어 놓은 수려한 경관이 바로 소양호이다. 소양강 댐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배를 타고 약 20분 들어가면 나오는 아름다운 세계가 바로 청평사이다. 청평사는 나오는 배편이 일찍 끊겨 자칫 마지막 배를 놓치면 영락없이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에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배에서 내려 상가 단지를 지나면 본격적인 숲길이 펼쳐지는데, 청평사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정감 있는 숲길이다. 바람 소리, 계곡 물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이름 모를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솔길을 걷는 것은 정말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이다.

편안하게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공주와 상사뱀'이라는 조각물을 만난다. 옛날 중국 당태종의 공주를 사랑한 한 평민 청년이 있었다. 신분상의 차이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은 결국 상사병으로 죽었다. 청년은 홀연히 한 마리 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을 감아버렸다. 놀란 당태종은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상사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신라의 영험 있는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우리나라 사찰을 순례하다 청평사에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노숙을 한 다음 날 범종소리가 들려오자 "절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밥을 얻어오려고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 수 있는지요. 너무 피로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다녀오겠습니다."하니 전혀 말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에서 내려와 주었다. 공주는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 나섰다. 절에 도착하여 절문에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떨어져 상사뱀은 죽어버렸다. 죽은 뱀은 빗물에 떠내려갔다. 공주가 밥을 얻어 가지고 돌아오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었다. 공주는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주고 청평사에서 머무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귀국했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돌아나간 문을 회전문, 공주가 노숙했던 작은 동굴을 공주굴, 그가 목욕한 웅덩이를 공주탕, 삼층석탑을 공주탑이라고 부른다.

'사랑 이야기는 왜 모두 슬픈 걸까?'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을 재촉했다. 아홉 개의 다른 소리가 난다는 구성폭포에서 발을 담그고 잠깐 쉬었다. 사실 어리석은 속인의 귀에는 하나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공주굴, 공주탕도 구경했다. 산 그림자가 비치는 영지를 지나 이제 청평사이다. 청평사에 들어서면서 회전문을 만난다. 회전문은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따 온 이름을 붙인 문인데 옛날에는 천왕문 기능을 담당했다고 한다. 청평사의 창건 시기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으로 알려져 있으니 천년사찰인 셈이다. 오래된 사찰임을 증명하듯 기와 윗부분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대웅전을 거쳐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극락보전에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울려나오는 소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가 사실 긴 기다림 끝에 이렇게 먼 청평사를 찾은 것은 바로 극락보전 벽에 그려진 십우도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아직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의 한 자락이나마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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