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조차 잃어버릴 뻔하다 간신히 되찾았다. 이런 현실에 국민의 한글 사랑을 높여가기 쉽지 않은 일이다. 모르는 사이에 위정자, 사회지도계층의 한심한 행태가 외래어 범람을 부르고 인터넷시대 젊은 네티즌들의 한글 비틀기를 조장했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해마다 선정하는 우리말헤살꾼들의 면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는 '제주영어교육도시' 조성방안을 추진하는 정부 제주지원위원회가 으뜸헤살꾼으로 뽑혔다. 동'면사무소를 애꿎게도 '주민센터'로 바꾼 행정자치부, '잉글리시 커뮤니티 광장' '리틀 유에스' 등 지자체들의 영어마을도 헤살꾼으로 선정됐다.
몇 년 전 제정된 국어기본법에는 '모든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표현이 한글이지 외래어 투성이다. 선전문구만 봐도 뻔하다. '하이 서울' '컬러풀 대구' 등 구호들이 그렇고, '이노밸리' '드림밸리' 등 혁신도시 이름들도 외래종 일색이다.
LG'SK 등 민간 장사 집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기업인 전신전화국은 KT, 담배인삼공사는 KT&G로 벌써 바뀌었다. 고속철도는 KTX, 한국철도는 코레일이다. 곧 정부 부처 이름도 영어 스펠 몇 개로 바뀌게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김종필이 JP로 시작하더니 DJ, YS 그리고부터는 웬만한 정치인은 영어 대문자 몇 개 갖다 붙이는 게 일반화됐다. 누가 애칭하지도 않는데 애칭이라 고집한다. 여기에 힘입어 연예인들은 아예 '외국인'이 판을 친다. 세븐, 라이언, 브라이언, 에픽하이, 다니엘 헤니 등등. 한국인 연예인은 방송에서 사라질 날이 올 것 같다.
한글이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공인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음문자, 음소문자가 한글이다. 휴대전화 문자 보내기가 유달리 성행하는 이유에는 문자판 10여 개로 1만 개가 넘는 음절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글의 편리함이 작용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 세종대왕상인 이유도 거기 있다.
그러나 갈고 닦지 않으면 제 빛을 잃게 된다. 가령, 넘어지다, 자빠지다, 엎어지다, 쓰러지다를 제대로 구별해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상적으로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그렇게 좀 더 가면 영영 잃어버리고 만다.
김재열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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