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웨일 라이더

"제가 사는 곳은 뉴질랜드의 작은 해변 마을인데, 수천 년 전 고래의 등을 타고 이 땅에 최초로 오신 분이 우리 선조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파이키아'였으며, 전 그의 마지막 자손입니다. 하나 저는 할아버지가 기대한 지도자는 될 수 없습니다. 전 사내아이가 아니니까요." 영화의 주인공인 열두 살 난 소녀 파이키아(케이샤 캐슬 휴즈)의 눈물어린 웅변의 한 대목이다.

이 영화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에 대한 이야기로, 지도자의 운명을 타고 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외면당해야 했던 한 소녀의 운명을 보면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의 의미를 생각할 기회를 준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파이는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지 못한 존재였다. 어머니가 난산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딸아이의 이름을 '파이키아'로 지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장차 족장이 될 사내아이를 기다렸건만, 하필이면 쌍둥이 남자아이는 죽고 여자아이만 살아남은 데다, 이름마저 선조의 이름으로 했으니 할아버지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맏아들이 빨리 마오리 여자와 재혼해 대를 이을 사내를 낳기를 강요하지만, 장손은 이런 고향이 싫어서 떠나버린다. 맏아들 중심의 가부장적 전통사회에서 차남은 항상 뒷전이었고, 여자는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마오리족의 전통과 관습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사회적으로 남자다운, 혹은 여자다운 행동은 '성역할 정체성'에 달려있다. 이것은 남녀 유전자 차이도 있지만, 환경적인 요인이 더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인류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에게 '여자는 바느질을 잘하고 교태롭고 아름답고 남의 마음을 잘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시대나 문화를 통틀어 여성다움에 대한 견해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창의성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에서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누가 더 중요하고 더 힘 있는가 하는 갈등만 일으킬 뿐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두루 갖춘 양성적인 인간이 지능도 더 높고, 사회 적응력이나 대인관계 만족도가 더 높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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