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자 매일신문에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골목길 통행료 논란'. 공매를 통해 골목길을 매입한 주인 김모(42)씨가 골목길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매달 통행료 2만원씩을 내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불거진 분쟁이었다.
▲골목길을 어찌할꼬
"내 집 앞 골목길도 통행료를 내고 다녀야 한다니 말이 됩니까?"
지난 8월 보도됐던 대구 서구 평리6동 434의 45 일대의 '골목길 통행료' 논쟁. 이는 골목길의 소유자였던 모 건설회사가 부도로 세금이 체납되자 서구청에서 이 땅을 공매로 내놓으면서 촉발됐다.
경매에서 좁은 골목길 2곳을 낙찰받은 사람은 김모(42)씨. 그는 골목길을 매입한 뒤 재산권 행소를 위해 "골목길을 이용하려면 앞으로 매달 2만 원씩 통행료를 내라."는 내용증명서를 인근 주민들에게 보냈고, 주민들이 반발하자 급기야 자신의 차로 길을 막기도 했다.
그로부터 두달 여가 지난 지금, 두 개의 골목길 중 하나는 주민들이 합의해 결국 매입을 했고 나머지 하나는 현재 협의가 진행중에 있다. 경매가격의 두배를 요구했던 김 씨를 구청 공무원들이 설득해 경매가격 수준으로 주민들과의 매매가 성사될 수 있도록 조율을 했고, 골목길 한 곳은 현재 다가구주택 4개동 주인들이 합의해 경매가격(400만원)에다 등기비용 등 김 씨가 사용했던 각종 행정비용 등을 더한 450만 원 선에서 재거래가 성사됐다. 434-45번지 골목을 이용하고 있는 박영자 씨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골목길을 사용하고 있는 네 개의 건물 주인이 협의해 결국 골목길을 공동소유로 바꾸기로 했다."며 "황당했지만 어쩔수 없이 매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한 곳의 도로는 아직 분쟁 해결의 실마리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한 세입자는 "현재는 통행을 막지는 않고 있어 사는데 불편은 없지만 집주인들 사이에 매입할지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들어 마음은 상당히 불안하다."며 "심지어는 벽을 뚫고 다시 출입문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소리 같은 이야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형식 서구청 세무과 체납처분담당은 "관련 법률 내용을 검토해 집주인들에게 대응 방법과 판례 등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건물주 4명 사이에 이견이 있어 아직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골목길 분쟁
이런 사례는 비단 이곳 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에서는 택지개발을 추진중인 건설회사가 지난 5월 개인으로부터 좁은 골목길 하나를 매입한 후 도로를 오가는 차량에 대해 통행료를 징수하겠다며 인근 주민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이 곳 역시 다가구주택 4개동 15가구의 주민 40여명이 15년째 사용해 오고 있는 유일한 통행로라고.
지난 8월 충북 제천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발생했다. 지은지 50년이 다 된 주택과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최근 이사온 한 주민이 "측량결과 자신의 땅이 골목길에 편입됐다"며 높이 2m의 펜스를 세워 막아버린 것. 설상가상으로 골목 반대편 끝에 있는 집도 '내 땅'이라며 추가로 펜스를 설치하겠다고 밝혀 주민들은 골목길 안에 갇힐 판이 됐다. 골목길 안쪽 20여 가구의 주민들은 땅 주인에게 사정도 해 봤지만 돌아온 답은 '어쩔수 없다'였다고 한다.
지난해 부산에서는 지은지 40년이 다 된 아파트 단지의 동과 동 사잇길을 두고 도로세 수백만원을 주고받은 사례도 있었다. 차량 진입이 수월한 9동에 비해 비탈진 계단 말고는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없었던 10동. 그래도 단지 사이 텃밭을 포장해 도로로 만들고 사용해 왔으나 지난 2002년 9동 주민들이 측량을 통해 샛길이 자신들의 소유임을 주장하면서 통행료 지불을 요구해 와 매년 200만원의 도로세를 같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지불해 왔다는 것이다.
▲ 왜 골목길에 눈독을?
이 같은 '골목길 논란'은 이번 서구청 사례를 통해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사실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개인들 사이에 유사한 골목길 분쟁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큰 땅 하나를 쪼개 여러채의 집을 짓게 될 때에는 진입할 수 있는 도로를 확보해야 한다. 큰 도로의 경우에는 지자체에 기부체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좁은 골목길의 경우에는 땅을 판 건설회사나 특정 개인이 대부분 도로를 소유하게 된다. 이 때문에 '골목길은 내 땅'이라며 통행을 막거나, 통행료 지불을 요구해 이웃 주민들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골목길은 언제든지 세금 체납 등 개인의 사정에 의해 경매시장에 나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재산가치 상승을 노리고 '골목길'에 눈독을 들이는 개인투자자들도 상당수 늘어나고 있어 유사한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꽤나 높다.
아무런 쓸모도 없을 것 같은 골목길을 사람들은 왜 경매를 통해 매입할까? 경매정보회사 리빙정보의 하갑용 대표는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될 때 골목길 역시 건설회사에서 매입해 '도로'라는 용도를 폐기하고, 다시 '대지'로 지목 용도를 만들 수 밖에 없게 된다."며 "나중에 높은 보상 비용을 내다보고 개인투자자들이 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골목길을 매입해 가치 상승을 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목길은 적은 비용으로 매입할 수 있지만 나중에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될 때는 대지의 3분의 2 이상에 달하는 토지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 통행료는 받을 수 있는걸까?
하지만 평리동 사례에서처럼 골목길을 매입한 뒤 '통행료'를 요구하는 사례는 드물다는 것이 경매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아무리 경매를 통해 골목길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함부로 길을 막고 '통행료 지불'을 요구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1996년과 2000년 대법원 판례에는 "도로부지로 무상제공됐던 땅을 경매에 의해 특정승계한 자는 사용수익의 제한이라는 부담이 있다는 사정을 용인하거나 적어도 그런 사정이 있음을 알고 그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즉, 평리동의 사례에서처럼 기존에 도로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경매낙찰자가 알고 있고, 이로 인해 재산권을 행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도 그 땅을 사들인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통행료'를 내라는 등의 요구는 행사할 수 없다는 풀이다.
권준호 변호사는 "만약 그 도로를 사용하는 가구가 특정 1~2가구에 해당한다고 할 때는 소유권자에게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판례가 많았지만, 그 길 밖에는 통행할 방법이 없는 가구수가 10여가구 이상 다수에 해당할 경우에는 주민들의 '통행권'를 우선하는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주민들이 통행료를 내지 않고 버틴다고 해서 아예 골목길을 막아버렸다가는 '통행방해죄'가 성립되 도리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입장이 되기도 한다고.
권 변호사는 "민법에서는 개인 소유의 사유지에 대한 통행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통행권 확인 소송'을 통해 집으로 드나들 방법이 골목길 하나 밖에 없는 경우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아무리 개인 소유의 도로라 할지라도 최소한 차가 드나들 수 있는 1.5~2m 가량의 도로를 내줘야 한다."고 설명하고 "이 법은 얼마나 많은 가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길이냐에 따라 법의 판결이 조금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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