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식(가명)씨는 대구시 중구 계산동 골목에서 구두를 닦는다. 그가 한 평 남짓한 구두종합병원을 열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70만원 안팎. 삶이 힘들 법도한데 그는 늘 웃는다.
2,3년쯤 전, 출근길에 그를 종종 만났다. 그는 당시 5,6세쯤이던 셋째 딸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치며 마주 오고 있었다. 어린이집 차에 태워보내기 위해 배웅하는 길이었다. 아이는 쉼 없이 종알거렸고, 아비 역시 뭐라고 대답하면서 걸었다. 그들 부녀가 아침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지만, 늘 웃고 있었으니 유쾌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낮에 김씨를 보는 날도 있었다. 그는 인근 빌딩 사무실로 '구두수집'을 다니는데, 때때로 한 손에는 '닦아 달라.'고 주문 받은 구두를, 다른 손에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구두 닦으이소.' 라며 걸었고,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핥으면 걸었다. 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귀갓길에 아버지한테 들러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다고 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어 좋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좋았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아이와 구두를 든 늙은 아버지가 손잡고 걷는 모습은 정겹다못해 행복의 정수처럼 느껴지곤 했다.
김씨는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 그는 그 많은 나이를 밝히면 사람들이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50대 중반쯤으로 써 주이소."
김씨는 구두닦이 경력 15년, 주민등록증 발급 역사 12년, 운전면허증 취득 4년이 됐다. 큰아들 12세, 둘째 11세, 셋째 8세, 막내 5세이다. 주민등록증 없이 거의 대부분 인생을 살았는데, 첫아이를 낳고 호적에 올리기 위해 주민등록을 신청했다. 결혼식을 올린 지는 이제 5,6년 됐다. 한글을 겨우 읽는 능력으로 운전면허시험에 도전, 3번 떨어지고 4번째 합격했다. 그리고 6인승 포터 트럭을 중고로 장만했다. 자식 넷에 아내까지 식구가 여섯 명이니 6인승이어야 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 아이들과 아내를 태우고 드라이버를 한다.
김씨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기억하는 게 별로 없었다. 경남 진주 문산이 고향이라는 것, 대구로 이사와서 산격동에 살았다는 것, 초등학교를 이틀쯤 다녔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 무렵 집을 나왔고 떠돌았다고 했다. 막노동도 했고, 수석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다. 15년쯤 전 구두닦이 종업원으로 시작, 몇 해 뒤 그 가게를 인수하고 옛날에 살던 동네에 찾아갔지만 부모님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구두를 닦느라 그의 손은 시커멓고, 손톱은 짐승의 발톱처럼 두껍다. 처음 구두닦이를 시작했을 때는 '구두 못 닦는다.'는 소문이 돌아 손님이 없었다. 해가 진 후에 대구백화점 근처 구두닦이가게로 가서 일을 배웠다. 요즘은 구두 잘 닦는다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다.
간혹 김씨를 만나면 미안해진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면 그는 '예, 안녕하세요?'라고 받으면서 눈을 내리깔고 기자의 신발을 본다. 구두를 잘 안 닦는 편이라 신발이 더럽고, 그럼에도 안 닦으니 미안하다. 어쩌다가 주말에 목욕탕에서 구두를 닦고 난 직후에 만나기라도 하면 다른 데서 닦았다는 사실에 더욱 미안해진다. 인터뷰 중에 '아저씨한테 그런 버릇이 있는 걸 아시느냐?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아시느냐?'라고 물었다.
"미안할 거 없어요. 우리 집 아아들이 잘 먹고, 잘 크는데….'
거기서 또 아이들이 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주자주 우리 아이, 내 책임, 내 일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기도 비슷한 다짐을 한다고 했다. 늦게 낳은 아이들이 걱정되는 때문인지 김씨는 나이만큼 늙지도 않았다.
김문식씨는 비 내리는 날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킨다. 구두 닦는 손님은 없지만 하이힐 뒷굽 갈아 끼우려는 손님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수좋은 날에는 아이들 과자를 한 봉지씩 사들고 들어갈 수 있다. 그가 말했다. "애들이 과자를 좋아해요."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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