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수용의 현장리포트] 산촌유학

'산촌유학'은 말 그대로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공부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거환경, 교육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대도시로 유학을 가는게 정설이지만 산촌유학은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도시지역 학생들이 농촌으로 옮겨와 그곳 학교에 다니면서 농가에서 일상생활도 하고 지역내 역사 및 문화유적지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과연 대도시가 주거 및 교육환경이 농촌에 비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느냐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산촌유학은 시작한다. 농어촌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생태적으로 기르자는 취지에서 지난 1976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처음 시작됐다. 급격한 이농으로 농촌 몰락을 경험한 일본에서도 산촌유학은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 상주시 화북면 산촌유학(blog.naver.com/nongsachul)

지난 5월 7일 화북초등학교는 9명의 새로운 학생들을 맞았다. 6학년 3명, 5학년 5명, 2학년 1명. 대부분 서울과 경기에서 유학 온 이들은 화북면 일대 네 농가에서 3주간 생활하며 농촌학교를 경험했다. 처음 아이들이 도착한 것은 5월 5일. 이후 이틀간 인근 푸른누리공동체 공간을 빌려 부모들도 함께 생활하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아이들은 산촌유학의 뜻에 공감한 네 농가에 배치됐다. 방들이 넉넉하지 않아 농가마다 같은 성별끼리 묶고, 형제'자매는 나누는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아이들은 묵은 곳은 대부분 귀농가정. 귀농 전에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했거나 한옥전문가로 목공을 맡을 수 있거나 아동미술, 요리 등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방과 후에 다양한 프로그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보여주는 식의 프로그램은 뺐다. 아이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밤하늘 별을 쳐다보는 일에 더욱 신바람을 냈다.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기, 이불 펴고 개기, 간단한 빨래하기, 재래식 화장실 이용하기 등에도 아이들은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적응했단다.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서울에서 1만 원에 사온 한 아이는 반 친구들이 "그런 거, 여긴 많다."며 대여섯 마리를 잡아다주자 머쓱해했다고. 농사일도 직접 해보고, 삶은 고구마로 간식을 먹고, 경운기도 타보면서 3주를 보냈다.

이런 호응에 힘 입어 지난 7월 2차로 산촌유학을 시도했지만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산촌유학 주최측과 학교 및 주민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다. 화북초등학교 관계자는 "처음 산촌유학, 즉 교류학습을 할 때도 학교측과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며 "게다가 전학을 와서 1, 2년씩 함께 지내는 것도 아니고 도시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잠시 지내다가 떠나는 바람에 오히려 기존 학생들은 행사가 끝난 뒤 허탈감만 남게 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국 7월 행사는 기존 학부모들이 투표를 통해 거부하기로 했다는 것.

학기 중에 도시 아이들이 올 수 있는 것은 '교류학습'이라는 제도 덕분이다. 일정 기간 도시 아이들이 농촌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을 일종의 체험프로그램 참여로 간주해, 해당 학교장간의 협의만 있으면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것. 하지만 전교생이 10여명 남짓한 시골학교에서 이런 행사가 치러지고 나면 학교 교사나 학생들이 적잖은 후유증을 앓게 된다고 학교 관계자는 우려를 표했다.

때문에 현재 화북초등학교에는 유학생이 없고, 입석분교에만 서울에서 전학을 온 5학년과 1학년 형제가 다니고 있다. 취재진이 찾아간 날, 대구에서 2학년 여학생이 새로 전학을 왔다. 5학년 남학생을 맡아 키우는 송난수 씨는 "학교 반대로 현재 단기 교류식의 산촌유학은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최소한 한 학기나 1년 이상 머무르는 전학생만 받고 있다."며 "현재 여건상 두 가정에서 4명 정도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올해 안에는 전학생 한 명 정도를 더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곳 아이들은 여느 농촌 가정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 방과 후에는 학원도 없이 마음껏 뛰어놀고, 마당을 쓸거나 밭에서 벌레를 잡는 일도 직접 한다. 주말이면 인근 5일장에 구경 가 순대국을 맛보기도 하고, 감이며 밤을 따거나 호박전을 부쳐먹기도 한다. 조만간 경주로 현장체험학습도 떠날 예정이다. 아이들 한 명당 월 55만 원을 받는다. 의료보험료와 유기농 식단으로 차려진 식사비, 각종 학교 행사비용, 현장학습비용 등이 포함된 돈이다.

지난 9월초 서울 강남에서 전학을 온 5학년 호영이의 담임 교사는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탓에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다 배운 내용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아침마다 머리가 아프다며 약을 먹어야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한달이 지난 현재는 이곳 학생들과 서스럼없이 지내면서 말수도 훨씬 많아지고 두통도 호소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문의) 018-275-2657 (이현숙)

◇ 딸에게 보내는 편지

며칠 전 한 농촌마을에 다녀왔단다.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라는 곳이야. 대구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서 상주에 도착한 뒤 충청북도 보은 쪽을 향해 다시 한 시간 넘게 가야 닿을 수 있는 곳. 산들로 빼곡이 둘러싸인 조그만 마을이었어.

그곳에는 전교생이 10명 조금 넘는 작은 학교가 있었어. 이름은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 분교는 작은 학교라는 뜻이야. 너희 학교와는 달리 입석분교는 운동장 뒤편으로 작은 산이 있고, 그곳에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쉴새없이 들려왔어. 그리고 운동장 한 켠에는 작은 잣나무가 자라는데, 잣알이 꽉 찬 잣송이가 굴러다니고 있더구나. 너는 아직 잣송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운동장에서는 전교생이 모두 모여 체육수업을 받고 있었어. 선생님을 따라 함께 체조도 하고, 서로 학년은 다르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 오빠와 함께 짝을 지어 배드민턴도 치면서 너무나 즐거워하더구나. 수업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이리저리 우르르 뛰어다니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 지 꺄르르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습이었어.

그 아이들을 보며 네 생각이 났단다. 그리고 아빠의 어린 시절도 떠올랐고. 어린 시절 아빠는 들로, 산으로 친구들과 뛰어다니느라 하루가 너무 짧을 정도였어. 봄이면 아카시아 꽃잎을 따먹었고, 여름이면 참외 서리를 하고, 가을이면 사과나무에 올라가 잘 익은 사과 하나를 골라서는 옷에 슥슥 닦아 먹고는 했지. 숙제를 안해가서 혼나기도 했지만, 아빠는 그 시절이 너무 행복했단다.

다영아! 미안해. 며칠 전 숙제를 미처 덜 한 너에게 게으름뱅이라며 야단쳐서 미안하고, 어려운 영어단어를 떠듬떠듬 읽는 너에게 왜 알아서 공부하지 않느냐고 고함질러서 미안하고, 친구들과 마음껏 놀고싶다는 너에게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느냐며 아빠의 욕심만 내세워서 미안해. 이 모든 게 너를 위해서라고 말을 하고, 아빠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왔지만 자꾸만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 수학 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게 과연 우리 딸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사계절을 호흡하고, 들판에 드러누워 뭉게구름 바라보며 머나먼 세상을 상상하고, 여름 밤이면 마루에 앉아 은하수를 바라보며 우주선장이 되는 공상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드는 게, 그게 바로 행복 아닐까? 다영아! 우리 시골로 떠날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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