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내 커플'이 말하는 그들의 애환은?

집에서도 회사서도 '따로 또 같이'

▲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는 사내커플이 늘어나고 있다. 김억준·박은하 씨 부부(맨 위)와 정광영·박은정 씨 부부(가운데), 송경섭·이희숙 씨 부부가 근무시간 중 짬을 내 만남을 가졌다.
▲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는 사내커플이 늘어나고 있다. 김억준·박은하 씨 부부(맨 위)와 정광영·박은정 씨 부부(가운데), 송경섭·이희숙 씨 부부가 근무시간 중 짬을 내 만남을 가졌다.

빌 게이츠가 결혼하기 전 신붓감을 두고 많은 말들이 있었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한 천재인 데다 세계 제일의 부자였기 때문. 하지만 그가 택한 반려자는 미인도 유명인도 아닌 부하 직원이었다.

연인 사이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KBS 아나운서 박지윤·최동석 커플에 대한 관심도 높아 두 사람의 이름은 최근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랐다.

최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반쪽을 찾은 사내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일한 월급, 불투명한 미래, 다른 직원들의 눈치, 헤어지고 나서의 불편함…. 이처럼 사내커플을 가로막는 장벽은 많다. 하지만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직장만큼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드물다. 대구지역에서 직장연애를 통해 결혼에 성공한 14명을 만나 직장연애의 궁금증을 풀었다. 이들은 "운명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귀띔했다.

▶이래서 좋다

한국전력 대구사업본부에 근무하는 김억준(37)·박은하(32) 씨 부부는 1999년 직장 동료의 소개로 만나 2001년 결혼했다. 결혼 전 두 사람은 사내결혼을 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같은 회사라는 것이 부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만나면서 같은 직장이라는 걸림돌은 서서히 없어졌다. 두 사람은 "사내결혼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다."고 웃었다. 같은 직장이기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를 마음껏 상대방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 김 씨는 "부인과 얘기하면 회사에서 기분 좋은 일은 배가됐고 슬픈 일은 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업무에 대한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이상배(37) 씨는 "부인과 업무가 비슷하기 때문에 모르는 업무에 대해서는 의논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라고 했다.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는 직장은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고 상대방을 더 잘 알 수 있는 곳이다. 동아백화점에 근무하는 정광영(35) 씨는 "직장에서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래서 싫다

많은 남성들이 꼽는 사내결혼은 단점은 '비자금'을 챙길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점이다. 책임테크툴에 근무하는 조정옥(35) 씨는 "남편의 비자금 조성을 원천봉쇄할 수 있어 돈 관리가 확실히 된다."고 웃었다.

상대방이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때 위로를 못해 줘 가장 가슴 아프다. 또 사내커플들은 상대방에 대한 소문이 가장 무섭다. 근무하는 곳이 다르더라도 사내 소문이 워낙 빨라서다.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회식을 할 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배우자가 금방 눈치채기 때문이다. 책임테크툴에 근무하는 류미혜(30) 씨는 "남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사내커플이 말하는 성공비법

▶신중하게 만나라=예전에는 직장동료의 시선이 두려워서 좀처럼 헤어지지 않았는데 요즘은 너무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진다. 만남을 신중하게 해달라. 헤어지면 기존 사내커플들을 좋지 않게 본다.

▶들켰을 땐 한술 더 떠라="어떻게 알았어? 우리 사귀는 거 맞아."라고 말하면 오히려 농담인 줄 알고 그냥 넘어간다.

▶정말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결정하라=사내결혼은 연애기간이 짧을수록 좋다. 연애기간을 단축하고 결혼을 빨리 하면 경제적 및 심리적 안정이 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나이 차가 사내결혼의 걸림돌은 아니다. 상대방이 나이가 많으면 더 이해해주는 장점이 있다.

▶입에 자물통을 채워라=결혼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무조건 비밀을 지켜라.

▶귀머거리 3개월·벙어리 3개월·장님 3개월이 되어라=회사에선 애인을 보지도 말고, 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고 말고, 말하지도 말라.

▶근무시간엔 남처럼 등을 돌려라=근무시간은 물론 회식자리에서도 멀리 떨어져 앉는 게 좋다.

■시대별 사내연애 풍속 변화

▶1980년대=한국전력 대구사업본부에 근무하는 이호동(50)·김은주(48) 씨 부부는 직장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내 커플이다. 80년대는 사내결혼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기. 두 사람의 데이트는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 씨는 데이트 약속을 잡기 위해 직장 부근 공중전화나 다방에서 전화를 걸었다. 이 씨는 "직장 동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말하지는 말고 듣기만 하라면서 통화를 했다."면서 "데이트 장소도 지방으로 다녔다."고 말했다.

▶1990년대=사내결혼이 서서히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 내에서 비밀을 지키는 것은 여전했다. 90년대는 쪽지, 편지와 삐삐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책임테크툴에 근무하고 있는 손창숙(34)·고창우(37) 씨 부부는 쪽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손 씨는 "동료들 몰래 쪽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애정을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2000년대=요즘은 사내결혼이 대중화되면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때문에 당당하게 사내커플임을 밝히는 경우도 잦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메신저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소통수단이다. 동아백화점에 근무하는 정광영(35)·박은정(29) 씨 부부는 인터넷 메신저를 이용했다. 같은 직장 송경섭(34)·이희숙(32) 씨 부부는 틈틈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적극 활용했다. 송 씨는 "근무중이라도 보고 싶을 때면 회사 앞으로 잠깐 나오라고 문자메시지를 자주 보냈다."고 웃었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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