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책을 읽는다)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한 권의 책이 한 삶을 바꾸기도 한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다이 시지에 지음/현대문학 펴냄

'정치적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 비로소 모든 예술은 오롯이 제 꽃을 피워 올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모든 예술가들이 그 정치적 아버지가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그토록 저항하는 것이라고 나는 또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마오의 문화대혁명은 이미 평등하게 가난해진 중국 인민 모두를 예술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혼자 상상한다. 카프카식으로 말하자면 '배고픈 광대'와 같은, 위화의 허삼관과 홍잉의 굶주린 여자와 다이 시지에의 재교육 청년들 그리고 무엇보다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내게 그들은 마치 모두 한데 모여 눈물에 밥을 말아먹는 달관한 예술가들 같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된 십대 후반의 나와 뤄는 재교육을 받기 위해 '하늘긴꼬리닭' 산으로 오게 된다. 그 재교육이란 그 산골 농민들이 우리에게 힘든 허드렛일 시키는 것이며, 집으로 되돌아갈 확률은 불가능에 더 가까운 3퍼밀이다.

문명의 냄새를 풍기는 유일한 물건은 내가 가져 온 바이올린과 뤄의 작은 시계뿐, 뤄는 무서운 마을 촌장에게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곡을 '마오쩌둥 주석을 찬양'하는 곡이라며 소개하는 해프닝으로 그것들을 지켜낸다.

다행히 이야기꾼 재능을 가진 뤄 덕분에 우리는 영화를 보고 농민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그 이야기 재능으로 뤄는 재봉사의 아름다운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또 우여곡절 끝에 이웃마을에 재교육을 온 친구 '안경잡이'에게서 발자크의 책도 한 권 얻게 된다.

마오의 '붉은 어록' 외에는 거의 모든 책이 금서로 통했던 때, 우리는 위선적인 행위로 결국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가게 된 안경잡이의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스탕달,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가 든 숨겨둔 가방을 탈취한다. 그리고 그 책들은 우리의 세계관과 인식체계를 바꾸어버린 것은 물론 우리가 읽어준 발자크에 매혹된 바느질하는 소녀마저 싹둑 긴 머리칼을 자르고 도시로 떠나게 만들어버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70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는 문화대혁명과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던 한 권의 책과 어처구니없는 살벌한 정치가 마치 우리의 '동막골'에서 터뜨려지던 팝콘처럼 흩어지는 환영을 겪었다. 문체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이다. 물론 그 팝콘이 토종 강냉이가 아닌 외래종 옥수수였던 것처럼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를 매혹시킨 것이 루쉰이 아닌 발자크였다는 것이 조금은 찜찜했지만.

박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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