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거주 화교들 '가슴속 이야기'

"낯선 이방인 아닌 이웃으로 대해주었으면…"

▲ 중국문화축제를 앞두고 학생들이 용놀이 연습을 하고 있다.
▲ 중국문화축제를 앞두고 학생들이 용놀이 연습을 하고 있다.

'화교(華僑)'. 외국에 사는 중국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살면서도 대만국적을 가지고 있어 여전히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화교의 역사는 올해로 102년. 20세기 초와 해방 전후에 이주한 1세대가 거의 사라지고 2, 3세대가 주역이 됐다. 때마침 12일부터 14일까지 대구시 중구 종로 가구골목 화교거리 일대에서는 '2007 대구화교중국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세대=이세붕(李世鵬·71) 씨는 중국에서 이주한 1세대라기보다는 1.5세대다. 해방 전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1세대는 대부분 작고하거나 극소수밖에 남지 않았다. 이씨는 부친이 한국으로 이주한 1937년 곧바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현업에서 은퇴, 지금은 대구화교협회에서 화교들의 호적정리를 맡고 있는 그는 어린 시절에는 충북 옥천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때 대구로 피란왔다가 그대로 눌러 살았다.

그는 "항상 고향(산둥성)을 그리워하며 사는 아버지를 보면서 살았지. 어릴 때는 한국에 설 땅이 없었어. 우리는 땅을 살 수도, 은행거래도 할 수 없는 이방인이었지…."라면서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칠순이 넘었는데도 어디를 가나 한국사람처럼 경로우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은 여전히 이방의 땅으로 각인되고 있다. 화교잡화상점에서 일하면서 비단을 팔았던 그는 다른 화교들처럼 중국음식점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화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화교들이 살고 제대로 된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라고 일갈했다.

1세대 화교들에게 한국은 외국인에게 가장 폐쇄적인 나라였다.

▶2세대=당가본(唐家本·56) 씨는 대구화교중고등학교 교장이다. 기자의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던 그는 입을 열자 할 말을 쏟아냈다. 대구화교소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만대학에 유학을 간 그는 모교로 되돌아와서 교편을 잡았다. 화교 2세대인 그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중국 산둥(山東)'이라고 하겠지만 내 속으로는 우리 고향은 바로 이곳이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중국은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여기서 태어난 우리 2세들이 뼈를 묻을 곳은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고 발전해도 여기서 살아 온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는 "한국국적으로 귀화할 수도 있고 국적을 유지할 수도 있는데 한국은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폐쇄적인 나라였다."면서 "한국도 이제서야 다양성을 추구하게 된 만큼 지금껏 한국사회의 한 축으로 살아온 우리를 더 잘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귀화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귀화하기도 어려웠고 귀화하는 화교도 수적으로 적었다. 그는 대신 미국이나 대만으로 이주하는 화교들이 더 많다고 했다.

▶3세대=임충령(林充嶺·30) 씨는 대구화교소학교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그는 꽃미남 같은 외모처럼 신세대다웠다. 그러나 대구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한국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여기서 살겠지만 여건이 된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 고 솔직하게 말했다. 임씨는 "어머니는 중국사람(대만)과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지금 좋아하는 여자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 작고한 부친은 오토바이 골목에서 유명한 중국집을 했다. 어릴 때는 중국집을 하는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되지 않았다. 또한 그때는 또 자신들에게 엄격한 한국사회에 대해 적잖은 반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는 "다른 나라의 화교에 비해 많은 차이가 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어린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 중 반 이상이 한국을 떠났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렇게 보수적이지는 않아서 크게 바라는 것은 없어요.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을 이방인처럼 보지 말고 이웃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대구를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