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우리가 남이가?

짝수 달 셋째 토요일. 이날은 두 달 만에 한 번씩 갖는 초등학교 동기생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저녁답에 정다운 얼굴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침 출근길의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얼마나 至重(지중)한 인연인가. 과거, 현재, 미래 가운데 하필이면 오늘 이 순간에 생겨났고, 광막한 세상천지 그 너르고 너른 지구별 구석진 곳 다 제쳐놓고 굳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그것도 같은 지역, 같은 고향에 함께 태어났음이 말이다.

이것은 천 년에 한 번씩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바위에다 옷자락을 스치고 올라가고 올라가기를 되풀이하여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기까지의 세월 동안에 한 번 만날 정도로 소중하고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매번 고향 벗들의 얼굴을 볼 때면 참으로 반갑고 기쁘다. 이 친구들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전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저 세상의 구석구석을 지키며 제각기 자기 할 일을 묵묵히 다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듬직하고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물질적인 면에서 가진 것이 조금 적은들 어떠랴. 세상의 기준으로 따져 사회적 지위가 좀 못한들 관계하랴. 때 묻지 않은, 고향의 소나무 같은 마음 하나만으로도 모두가 덥석 손을 맞잡을 수 있어 흐뭇하지 않으냐. 부여잡은 손과 손에서는 세월에 부대끼며 살아 온 진한 삶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온다. 그 투박한 손들이 나는 좋다.

술잔을 부딪치면서 건배를 나눈다.

"우리가" 라고 넉살 좋은 친구가 선창을 하자,

"남이가?"

다른 친구들이 일제히 목청을 높인다. 그래, 맞아. 성과 이름은 각기 다를지라도 우린 이미 남이 아니지. 이 건배가 풍파 심한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온다. 몇 잔의 소주에도 이미 술기운이 오르는 것은 내가 꼭 주량이 약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가슴을 타고 전해오는 느꺼운 友誼(우의)에 취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든 팍팍한 사람살이에서, 이런 기분마저 없다면 훨씬 더 지치고 고달플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한 마디로도 세파에 찌든 삶의 중압감이 한꺼번에 스러지는 듯하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묵은 사람이 좋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말 그대로, 죽창을 들고 말타기놀이 하던 竹馬故友(죽마고우)란 그래서 좋은가 보다. 우리는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함께 잔뼈가 굵고, 그리고 나이 들어 늙어 가는 형제자매와도 같은 사이들이다.

그러니 굳이 말없이도 부딪는 술잔 속에 이미 서로의 마음과 마음들이 과즙처럼 우러나고 있다. 이렇게 쌓아 온 세월의 더께가 우정의 산맥을 더욱 높고 더욱 깊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람은 젊어서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고향 친구들 사이의 만남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다. 특히나 초등학교 동기생들의 모임에 있어서는….

아직은 중년인 그들의 대화 가운데는, 언제나 코흘리개 시절의 고향의 푸르른 산과 들, 세월 속에 덧칠된 교정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수구초심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술판은 이미 거나해지고 밤은 시나브로 깊을 대로 깊었다. 이제 각자 아내와 자식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두 달 뒤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지만 마음엔 아직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이 다시 발걸음을 돌려세운다. 모두가 어깨를 겯고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흘러간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한다. 비음으로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가 메아리를 남기며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중으로 흩어진다. 잘 가라며 마주 잡는 손길에 어느새 따사로운 정이 흠뻑 묻어 있다. 뺨을 스치는 시월의 밤바람이 시원스런 감촉으로 다가든다.

곽흥렬(수필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