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자전거를 둘러싼 여러 시각

어떤 지역 전체를 자전거로 일주하는 매혹적인 여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에서 확인한 대로 일주용 자전거를 전문 임대해 주는 업체에 갔으나 그날따라 단체 손님이 들이닥쳐 남은 자전거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자전거 임대업체로 가자고 하자 기사는 몇 군데 연락을 해보더니 웬 자전거점 앞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 가게 역시 자전거를 임대해 주긴 했지만 원래는 자전거 판매를 위주로 하는 곳이었다.

임대 전문업체보다 나은 점은 하루 임대료가 전문업체에 비해 천 원쯤 싸다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한꺼번에 사흘치를 받으면서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조금 깎아주는 동시에 임대 전문업체의 평판은 사정없이 깎아내렸다.

임대료가 얼마든지 간에 필요한 사항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주인의 대답은 "우리 자전거는 임대업체에서 빌려주는 싸구려 하고는 달라 절대로 고장이 나지 않는다."였다. "길이 험하면 타이어에 구멍이 나지 않느냐."고 하자 "그렇게 험한 길을 자전거 타고 갈 일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된 경우에는 가까운 자전거 수리점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계속 질의와 응답을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없어 일단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시내를 빠져나가서 본격적으로 자전거 페달에 힘을 가하기 시작하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자전거가 낡아서인지 체인이 톱니에 정확히 물리지 않고 헛도는 경우가 있었다. 다리로 만들어 낸 동력이 자전거 바퀴에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주 헛도는 것은 아니어서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참고 가고 있었다.

사실은 날씨가 자전거를 타기에는 너무 덥다는 게 훨씬 더 큰 문제였다. 날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30km쯤 갔을까 싶은데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 생겼다. 외진 도로의 내리막길에서 달려 내려가다 미끄러지며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입긴 했지만 준비한 응급약으로 처치를 하고 나자 그럭저럭 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지 않고는 일주를 계속할 수 없을 듯했다. 사람보다 자전거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체인이 끊어져버려서 내 능력으로는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걸어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기에는 해가 너무 뜨거웠고 어디에 수리점이 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일주용 자전거 임대 전문업체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일주를 포기하거나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못할 사정이 생길 경우에 트럭을 보내 자전거를 실어오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자전거점에 전화를 걸어서 그런 내용을 이야기했더니 자신들은 임대 전문이 아니라서 그런 트럭은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럼 자전거를 고칠 데도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차도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하자 114 안내로 물어봐서 화물차를 부르라고 했다. 운반비용이 많이 들 것 같으면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버스 운전기사에게 사정을 하면 자전거를 함께 버스에 실어줄 것이라고, 그렇게 자전거를 반납해도 이미 낸 임대료는 반환되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운 좋게도 지나가는 승용차를 잡을 수 있었고 승용차 운전자가 자신도 자전거 일주를 해본 적 있다면서 애써 자전거를 트렁크에 실어준 덕분에 자전거점으로 돌아갈 수 있게도 되었다. 가면서 생각하니 자전거점 주인이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약관도 영수증도 챙기지 않은 나 역시 잘한 게 없었다.

자전거 일주라는 야심 찬 계획은 거기서 끝났다. 선불한 임대료는 돌려받지 못했지만 체인이 헛도는 증상에 대해서는 수리를 요구해서 다음 사람이 헛되게 힘을 빼는 일이 없도록 했다. 자전거 하나라도 임대해 준 주체와 임차한 쪽의 입장 차이가 제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표현되는 방식을 배운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손님과의 논쟁에서 금전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결코 손해를 보지 않으며, 자신의 입장을 철두철미하게 관철하는 야무진 상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건 즐거운 일이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인심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가슴 뜨겁게 경험하게 된 것은 임대료의 천배 만배를 투자해도 얻을 수 없는 큰 수확이었다.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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