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장하빈 作 '호두'

저토록

단단한 슬픔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장대로 올려치면 호드득호드득 떨어져 사방 구르는

상처 난 껍질 벗기다 보면 손바닥 붉게 물들이는

욕망의 이빨로 와사삭 깨물어 보거나

돌멩이로 두들겨 속울음 하나씩 꺼내면

수줍은 알몸 드러내고 마당귀에 껍데기 쌓이는

언제였던가, 먼 나라에서 쫓겨나 이 땅에 시집 온

楸子란 별명을 가진

슬픈 여인

호두는 왜 껍질이 단단할까. 속이 너무 여리기 때문이리라. 호두를 보면 상처를 입을까봐 전전긍긍 웅크려 있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인은 호두나무가 매달고 있는 열매를 단단한 슬픔으로 인식한다. 딱딱한 껍질 속에서 보늬를 둘러쓰고 있는 속살을 속울음이라고 말한다. 수줍은 알몸으로 속울음 우는 이 땅에 시집 온 여인. 여진, 거란, 말갈족 외국인 신부를 말함인가. 오랑캐 호(胡)자를 달고 있는 호두[胡桃]란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런데 왜 시행을 연 단위로 떼어 벌려놓은 것일까. '저토록'이란 부사가 단서가 될 듯싶다. 호두나무와 시적 자아의 동일시. 지금 눈앞에 서있는 호두나무에 자신의 슬픔을 투사한 것. 먼 나라에서 시집온 여인을 앞에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자신의 속울음을 노래한 것이다. 속이 너무 여려 늘 상처받고 사는 시인이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