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유산 답사의 맹모들

▲ 황신영, 이경희, 곽명자, 한혜경(왼쪽부터) 씨 등 화남초등학교 학부모 4명이 달성군 남평 문씨 세거지를 찾아 자녀와 함께하는 문화유적답사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지난 11일 오후 대구 달성군 남평 문씨 세거지. 이경희(46·여) 씨 등 대구 화남초등학교 학부모 4명은 한옥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즈넉한 한옥 마당에는 발갛게 감이 익어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이 씨 등은 자녀들과 함께 열심히 문화유산을 찾아다닌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말 대구시로부터 대구관광 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 열성 학부모들. 이들은 아이 숙제로 마지못해 시작한 현장 답사가 이렇게 즐겁고 유익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자녀와 함께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느낀 보람과 노하우를 들어봤다.

▶엄마들의 문화유산 답사기

"처음엔 학교에서 왜 이렇게 어려운 방학 숙제를 내주나 부담스러웠어요."

이경희 씨는 지난해 여름방학 처음으로 아이(5학년)와 함께 문화유산 답사를 떠나게 된 사연을 소개하며 웃었다. 문화유산 교육 시범학교 화남초교에서 내준 방학숙제는 지역의 문화유산 6곳을 답사하고 체험학습 보고서를 내도록 한 것. 확인을 위해 답사 장소마다 도장을 받아오도록 했다. 이 씨는 대구관광정보센터 홈페이지(tour.daegu.go.kr)에서 목적지를 선택해 답사 길에 올랐다. "녹동서원에 들렀더니 안내인이 친절하게 비디오까지 틀어주시더군요. 목적 없이 갔더라면 겉만 보고 나왔겠지요." 현장 체험 학습의 재미를 알게 된 아이는 방학 동안 관광정보센터에서 선정한 명소 30곳을 완주, 30개의 도장을 받았다. 이 씨는 "아이가 육신사에 흥미를 갖더니 올해까지 여섯 번이나 다녀왔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감동은 엄마들의 보람으로 이어졌다. 황신영(35·여)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데리고 불로동 고분군에 답사를 갔다가 "엄마, 산에 혹이 났어!"라는 딸아이의 탄성에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의 감성과 표현력이 대견했고 잘 데리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 씨는 "여러 곳에 자주 답사를 다니다 보니 그동안 고향 청송에 다닐 때 무심히 봤던 아흔아홉 칸짜리 한옥까지도 해설사만큼 소개해 줄 정도로 문화유산 관련 지식이 쌓였다."고 했다. 곽명자(35·여) 씨는 남평 문씨 세거지에서 처음 답사의 보람을 느꼈다. 아이가 아파트와 전혀 다른 구조의 한옥을 신기해하며 전통가옥에 흥미를 갖게 된 것. 곽 씨는 아파트에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한옥은 편리함 이전에 조상의 생활지혜와 철학이 가득 담긴 훌륭한 교육공간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재미있어 하니까 저까지 신이 났죠. 이젠 제가 '오늘 학원 빠지면 안 되니?'하고 아이에게 답사 가자고 조를 정도입니다."

▶엄마들이 전하는 노하우

현장 체험 학습, 그중에서도 문화유산 답사는 이동거리의 부담과 전통문화는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학부모들이 선뜻 시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화남초교 어머니들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한혜경(43·여) 씨는 대구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명소 30곳을 다 돌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이동이 편해 문화유산 답사에는 그만이었다. 한 씨는 "김밥 도시락, 물병을 가지고 버스에 타기만 하면 되더라."면서 "갓바위 정상에서 아이와 함께 바라본 광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황 씨는 답사 초보라면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라고 권했다. 반드시 전통 문화유산일 필요는 없다. "대구 수목원을 갔다가 예전에 이곳이 쓰레기매립장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이가 놀라더군요. 평소 바람 쐬러 나왔을 때는 몰랐거든요."

문화유산을 찾았다면 해설사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라고 조언했다. "방문객이 뜸한 명소에서는 해설사도 지루해 하시더군요.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정말 세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어려운 용어와 한자가 가득한 안내판보다 훨씬 유익했습니다."

답사 장소는 일주일이나 보름 전에 미리 고르는 것이 좋다. 답사 장소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얻어야 현장에 도착해서 헤매지 않고 목적했던 내용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답사 장소에서는 현장을 소개하는 팸플릿 등을 꼭 가져오고 사진도 찍으라고 권했다. 아이가 흥미를 갖는 내용에 대해서는 인터넷 자료를 검색하거나 백과사전, 관련 서적 등에서 참고 지식을 찾아주되 숙제라는 부담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씨는 "아이가 육신사를 여러 번 다녀오더니 이달 30일 육신사에서 사육신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제사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고 하더라."며 "현장 체험 학습은 아이 스스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머니들은 "지난달에는 아이들과 함께 수원화성과 한국민속박물관을 다녀왔다."며 "일단 떠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동기부여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1. 주말에는 온 가족이 함께 문화 유산 답사를 떠나자. 자가용이 없으면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적극 활용하자. 황신영 씨는 주말이나 토요휴업일을 이용해 문화 유산 답사를 가는데 아버지가 동행하면 가족 행사로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2. 답사 장소는 일주일이나 보름 전에 정하고 해당 문화 유산 등에 대한 사전 정보는 충분히 준비하자. 이런 준비는 아이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내용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고 부모의 설명을 통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유발시킬 수 있다.

3. 답사 장소에 도착해서는 문화유산 해설사 등 전문가의 안내를 꼭 받자. 어려운 책이나 간단한 안내판보다 훨씬 유익하다. 노트와 필기도구를 꼭 준비해서 아이에게 해설 내용을 메모하게 하거나 궁금한 내용은 현장에서 꼭 물어보도록 권하자.

4.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는 동행한 학부모들이 관심을 보여주자.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관심을 보여주면서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 볼 여지를 만들 수 있다.

5. 답사를 다녀와서는 흔적을 남기자. 직접 찍은 사진이나, 팸플릿, 기념품 등을 챙겨놓으면 체험의 기억이 오래 가고 더 큰 애착을 갖는다. 아이와 함께 방문한 장소별, 테마별로 간단한 답사보고서를 함께 만들어보는 것도 현장 답사의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 스탬프트레일(Stamp Trail)이란?

스탬프트레일은 대구시관광협회와 대구시가 지난 2003년부터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테마 관광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관광협회 등이 추천한 문화유적·관광 명소 30곳(7개 권역)을 직접 가서 관람하고 도장(스탬프)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구 시민들이 꼭 알아야 할 우리 지역의 명소를 소개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30곳을 완주한 참가자를 선정해 매년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하고 있다. 지난해는 212명이 홍보위원으로 위촉됐다. 대구시 관광과에 따르면 스탬프트레일은 특히 현장 체험 학습을 해야하는 초등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대구시티투어와 더불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스탬프트레일 책자는 시내 관광안내소나 두류공원 내 대구관광정보센터에서 1천 원에 판매하고 있다. 대구시는 매년 11월 30곳을 완주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명예홍보위원위촉 신청(대구시 관광과·803-3091)을 받아 소정의 기념품도 선물하고 있다.

스탬프트레일이 추천하고 있는 권역별 명소를 소개한다(대구관광안내도 참고). ▷도심권:달성공원, 경상감영공원, 서문시장, 대구약령시, 관덕정순교기념관, 대구향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동북권:경북대학교 박물관, 대구전시컨벤션센터, 불로동고분군, 옻골마을(경주최씨 종가) ▷팔공권:갓바위, 동화사, 팔공스카이라인, 파계사, 신숭겸장군유적지, 부인사 ▷동남권:허브힐즈, 국립대구박물관, 대구월드컵경기장, 녹동서원 ▷서북권:묘골마을(육신사·삼가헌) ▷서남권:C & 우방타워랜드, 앞산공원, 인흥마을(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대구수목원, 용연사, 화원유원지 ▷현풍권:도동서원, 비슬산자연휴양림 등이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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