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입시프리즘] 위기의 순간에 강해지려면

어떤 수험생이 초췌한 얼굴로 상담하러 왔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불안하여 공부도 안 되고 잠도 푹 잘 수 없어 고통스럽다고 했다. 대화중에 그 불안감의 진원지가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께서는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취업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대학에 보내주지 않겠다며 압박을 가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시험 당일 실수를 할까봐 지금부터 걱정이 태산이라는 것이다. 매일 기도하러 나가는 어머니의 지친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준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켜 놓아도 부모님과 마주하는 순간 마음의 평정이 깨진다고 했다.

격려와 악담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 아직까지도 꾸중과 간섭이 학생을 분발하게 하는 특효약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실패의 가능성을 들먹이며 위기감을 조성하여 사람을 분발하게 하거나 통제하려 하는 것은 일종의 가학적 폭력 행위이다. 위기론은 체벌보다도 폭력적이며 그 어떤 것보다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 위기론으로 남을 설득하려는 사람에게서는 진정으로 걱정하는 마음과 고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 논거 없이 휘두르는 위기론의 무자비한 횡포 앞에서 우리 자녀들은 위기 극복의 의지를 갖기보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더욱 무기력해지기가 쉽다. 불안감은 인간의 모든 잠재 능력을 파괴하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이 만년에 암으로 투병하다가 마지막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담당 의사가 그에게 수술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파인만은 수술 중에 살아 날 가망이 없다면 즉시 마취에서 깨어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세상의 빛이 꺼지는 순간이 어떤지 꼭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그 진지한 탐구 자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파인만의 모습은 득도한 고승의 입적 장면을 연상시켜준다.

수능시험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며 즐기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 연재물을 쓰면서 마감시간이 주는 압박감과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마감시간이 주는 압박감이 없으면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긴장과 압박이 없다면 숨 막히는 한판 승부, 몰입과 성취의 기쁨 등은 맛보기 어려울 것이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권태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가능성이 높다. 수능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최후의 순간까지 탐구의 끈을 놓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려 했던 파인만의 모습을 떠 올리며 심기일전해 보자.

(교육평론가, 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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