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치입문 12년만에 대권 도전…정동영은 누구인가?

"이제는 정보화 사회에 어울리는 미디어 출신 대통령이 나올 때도 됐다." (매일신문 인터뷰 7월12일자 4면).

15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정동영 후보는 기자·앵커 출신으로 탁월한 언변과 강한 추진력으로 정치입문 후 빠르게 권력중심에 자리잡았다. 1996년 기자직에서 물러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최연소 최고위원·당 의장·통일부 장관·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등으로 승승장구했으며 정치입문 12년 만에 범여권 최대정파의 대선후보가 된 것.

'개성(開城) 동영'이란 신조어는 정동영 리더십의 또 다른 정수. 수년째 설계도에만 머물던 개성공단을 직접 '손에 잡히는 현실'로 만들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화려한 이력 뒤에는 정치적 도전과 시련도 있었다. 과거 민주당 시절'제왕적 총재'체제에 맞서 개혁의 기치를 들고 '정풍(整風)운동'을 전개했으며,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이 몰아친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선 '경선지킴이' 행보, 열린우리당 창당과 17대 총선정국 정면돌파 등 어려운 시기에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

2004년 3월, 17대총선을 앞두고 대구에서 발언한 노인폄하 발언 때도 무조건 사과하고 열린우리당 의장직과 국회의원직을 모두 버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취약한 여론 지지도와 '참여정부 황태자' 논란, 경선과정의 조직동원 논란은 정 후보에게 드리워진 그늘이다.

자라온 환경을 보면 정 후보는 6·25 전쟁 휴전협정일인 1953년 7월 27일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서 태어났으며 전쟁통에 4명의 형이 병사하면서 장남으로 성장했다. 전주고 2학년 재학시절엔 도의원을 지낸 부친이 갑자기 별세해, 홀어머니와 3명의 동생을 보살피는 가장 역할을 했다. 대학시절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3개월간 복역했다 군에 강제징집됐다.

한편 그의 당선에는 그를 음양으로 도왔던'정동영 사람들'의 힘도 컸다. '정동영의 사람들'은 크게 현역 의원과 외부영입 케이스, 정책자문 및 참모그룹, 지지조직인'정통들'과 국민참여운동본부, 전주고 인맥 주축의 정동포럼 등으로 나뉜다.

4선 관록의 이용희 국회부의장의'공'이 컸다는데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충북 경선 당시 지역구인 보은·옥천·영동군에서 '몰표'를 줘 경쟁후보 진영에 조직·동원선거 논란의 빌미를 제공키도 했다.

정 후보의 '싱크탱크' 나라비전연구소 이사장이기도 한 박명광 의원은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아 이강래·문학진 의원과 외부에서 영입된 윤흥렬 전 스포츠서울 사장·조성준 전 노사정위원장 등과 함께 '5인 공동선대본부장 체제'를 꾸려왔다.

캠프 내 주요직책을 수행해 온 민병두·박영선·김현미·노웅래·정청래 의원 등도 그의 든든한 장수들. '그림자 내조'를 해 온 부인 민혜경 씨도 '숨은 공신'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 정동영 후보 연보

▷1953년 전북 순창 출생

▷1971년 전주고 졸업

▷1974년 유신반대 민주화투쟁 구속, 민청학련 연루 강제징집

▷1977년 육군병장 제대

▷1978년 문화방송(MBC) 입사

▷1979년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전주 덕진), 전국최다득표 당선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보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전주 덕진), 2연속 최다득표 당선

▷2000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2001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2002년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선대위 공동위원장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다보스포럼' 특사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영입추진위원장

▷2004년 열린우리당 당 의장

▷2004년 통일부장관

▷2004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2005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2006년 열린우리당 당 의장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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