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목수

외환위기 이듬해 필자는 강원도 횡성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유급 휴가를 얻어 통나무집(log house) 짓는 기술을 배웠다.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온종일 통나무와 씨름을 하고 저녁엔 이론 강의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당시 익힌 엔진 톱 사용법 등은 이미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잊히지 않는 게 있다. "보통 집을 그릴 때 대부분 사람들은 지붕→대들보→기둥→바닥 순서로 그려요. 그러나 목수들은 맨 먼저 밑바닥 기초부터 그리고 마지막에 지붕을 그립니다." 통나무학교 교장이 저녁 이론강의 시간에 들려준 말이다. 육체 노동과는 거리가 먼 '먹물'이었던 필자에게 이 말은 소름이 돋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서양의 高手(고수)들은 도끼 한 자루만 있어도 통나무집 정도는 지을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기술이 변변찮고 연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목수를 '도끼 목수'라고 부른다. 동서양 건축의 차이인가 보다. 대목과 소목으로 단순 분류되던 목수의 작업이 세분화'전문화한 것은 조선 후기로 알려졌다. 대목장 중 도편수와 부편수는 공사 전체를 주관하고, 정현편수는 지붕의 구배, 기둥과 보의 크기와 간격을 담당하고, 공도편수는 공포 짜는 일을, 연목편수는 서까래 거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한옥 등 목조건축물 건축이 줄면서 전통 목수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인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은 취임사에서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산성 있는 노동력을 길러내는 정도에 따라 연방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실용주의 교육정책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CEO형 총장들이 득세하면서 영어강의가 보편화하는 등 대학마다 실용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으나 사람은커녕 목수조차 길러내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기업의 불만이 커지자, 졸업 후 재교육이란 애프터서비스 제공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대학은 없고, 牛骨塔(우골탑)과 母骨塔(모골탑) 父骨塔(부골탑)만 득실하다. 우리 대학들에 제대로 된 사람과 목수 양성을 기대하는 게 緣木求魚(연목구어)가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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