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햇살이 따사롭게 내리 쬐는 오후 한 때. 분수가 물을 뿜고 있는 경상감영공원 한 벤치에 젊은이 못지않은 애정공세로 보이는 노커플이 눈에 띈다. 지긋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허리를 꼭 껴안은 채 놓을 줄을 모른다.
"등산을 하다 만났어. 이 사람과 이렇게 있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마음이 즐거워."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를 자리를 피하자면 할아버지의 소매를 잡아끌자 못 이긴 척 노커플은 함께 자리를 떴다.
옆 벤치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태화(가명.75. 서구 내당동) 씨는 "늙었다고 이성생각이 없다는 건 말이 안돼. 이성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내지 않을 뿐이지. 난 일흔까지 여자와 잠자리를 시도했는데 성공(?)하면 얼마나 젊어지는 느낌이 들어."라며 운을 뗐다.
우연히 새벽에 잠이 깨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야릇한 장면을 보게 됐고 그게 무척 자극적이었다는 조성기(가명.88.수성구 지산동) 씨는 "마음은 아직도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예전만큼은 못해도 이성에 대한 마음은 늘 열려 있지. 특히 이성친구라도 생기면 달라져. 왠지 20,30대 젊은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거든."
◇ 아직도 이성을 꿈꾼다
노화와 더불어 인간의 생물학적인 기능은 서서히 퇴화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성욕은 감소되는 여러 기능 중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특정질병이 없이 건강이 양호한 상태에서 이성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아끼지 않는 파트너가 있다면 '성생활에 정년은 없다'는 게 의학계의 전반적인 결론이다.
반면에 사회적 관습과 가족관계, 도덕적 통념이 노인의 성 욕구를 엄폐하거나 방관 또는 자제하게 만드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노인들 대부분은 이성교제를 원한다. 취재 결과, 대구시내 65세 이상의 노인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이성 친구 한 둘쯤은 알고 지낸다는 것으로 확인됐다.
"솔직히 말해 젊고 예쁜 여자를 몰래 갖고 싶지, 왜 아니겠어."
시내 나들이 길에 나섰다는 김기정(가명'72'수성구 범어동) 씨의 말에 함께 온 동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 친구를 사귀려면 돈이 많이 들어. 식사하고 차나 소주 한 잔 마시자면 주머니에 2,3만 원 정도는 있어야 돼.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늙은이들에겐 큰돈이거든."
김 씨처럼 인생의 황혼을 다시 한 번 로맨스로 불태우고 싶다는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여력과 층층시하(?) 가족들의 눈치이다. 이런 이유로 성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주저하는 경우도 많다.
대신 노인의 성이 그만큼 더 은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구 노인의 전화' 관계자에 따르면 독거노인 집을 방문할 때면 방안 가득 도배지 대신 여인의 나체사진을 걸어 놓은 노인들을 종종 보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 시카고대학 한 연구에서 알 수 있든 노인들의 성 욕구는 의외로 왕성할 뿐 아니라 70%가 적극적인 성 생활자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 90살도 성생활 가능하다
인간은 몇 살까지 성 생활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섹스에는 나이제한이 없다.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다만 나이가 들면서 성욕 감퇴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질병 때문이라며, 이에 따라 발기력이 줄면서 차츰 섹스와 거리가 멀어질 뿐, 근본 성 생활의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몸 관리와 적절한 운동을 통하면 혈액순환이 촉진되고 신진대사가 활발하면서 성호르몬도 자연 증가해 성욕도 덩달아 왕성해진다. 90세에도 성 생활 혹은 성 반응이 가능하다는 건 헛말이 아니다.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 사회조사연구소가 2005년 60세 이상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인의 성' 조사에서는 "성 욕구가 있을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란 물음에 전체 응답자의 50.8%가 성 욕구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한다고 답했다. '직접 성관계를 한다'가 29.2%, '접촉이나 애무 등 대안 성행위를 한다'가 10.8%, '자위행위를 한다'가 1.2%, '성인 잡지나 소설을 본다'가 8%, '성인영화를 본다'가 1.6% 등으로 노인의 성 생활은 다양한 행태로 전개되고 있다.
◇ 망칙스럽다는 인식 버려야
2020년엔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때가 되면 단순히 사회적 관심이 장수만이 아니라 노후 생활의 질의 영역도 함께 넓혀 나가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노인의 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늙으면 자연스럽게 성 기능이 떨어진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노인도 왕성한 성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성 기능이 있는 노인이 참으면 몽정도 하게 된다.
팔순의 조정희(가명'82'북구 침산동) 씨는 "70 때까지는 잠자리를 한 걸로 기억해. 마누라가 먼저 가고 난 후 허전한 마음에 여자(당시 50대)를 만났었는데 그 이도 혼자된 몸이라 서로 의지가 됐지."
조 씨는 재혼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집안 형편상 엄두를 낼 수 없어지면서 이성친구와 만남이 뜸해졌고 시간이 가면서 헤어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 때의 추억과 만남을 생각하면 지금도 좋아"라며 주름살 얼굴에 홍소를 띄었다.
취재 도중 만난 많은 다른 노인들도 이성친구의 존재에 호감을 표시했다. 우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기분이 좋고 좀 더 친해져 스킨십이라도 오가면 마치 젊은 날 한 때의 추억도 되살아나지만 무엇보다 생활이 즐거워지더라는 것이 중론.
일부 노인들은 체통 때문에서라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를 꺼렸지만 못내 아쉬움은 남는 듯 했다.
'흰 눈이 지붕을 덮었다고 집안의 벽난로가 타지 않는 것은 아니다.'는 서양 격언처럼 성이 본능에 따른 기쁨이라면 노인의 성에 대한 해법 역시 노인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노인의 성'은 성 생활횟수가 줄어들 지언망정 성적 만족마저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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