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은 많다.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인 식욕을 가장 품격있게 채워줄 수 있는 직업은 아마 요리사가 아닐까? 중세 유럽에서 요리사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왕의 사랑을 받던 요리사는 귀족 작위를 받기도 했다. 요리사의 상징인 하얀색 높은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무렵. 일반 보조 요리사와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근대로 접어들며 요리사의 세계는 바뀌었다. 왕실이나 귀족계급만을 위해 만들던 요리를 특급호텔과 유명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게 됐고, 최근 들어 다양한 레시피를 갖춘 책과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별미 중에 별미로 꼽히던 요리들도 비록 '표절' 작품이기는 하지만 맛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요리사는 갈수록 선망받는 직업이 되고 있다. 특급 호텔 주방장은 억대 연봉을 받는다. 그들을 모셔가기 위한 유치전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처럼 최고 중의 최고가 되기 위한 예비 요리사들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전문직을 팽개치고 늦깎이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요리사를 양성하는 고등학교가 생겨나고, 일찌감치 초등, 중등학교부터 요리사의 길을 걸으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요리관련 학과를 갖고 있는 국내 100여개 전문대학들이 너나 할 것없이 요리경연대회를 열고, 매 대회마다 예비 요리사들로 북적인다.
최고의 요리를 통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또 신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픈 고등학생 요리사들이 지난 12일 '제9회 고등학생 웰빙 요리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계명문화대학에 모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요리를 통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또 신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픈 고등학생 요리사들이 지난 12일 '제9회 고등학생 웰빙 요리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계명문화대학에 모였다. 요리사의 직업세계를 다룬 영화, TV 드라마, 그리고 만화까지 등장하면서 최근 들어 요리사는 선망받는 인기 직종이 됐다. 일찌감치 실업계 고교 조리관련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요리학원을 다니며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학생들이 늘고 있고, 관련학과가 있는 전국 대학들마다 '요리경연대회'를 개최해 실력있는 예비 요리사들에게는 무시험 입학 특전과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대회는 시작되고
이 날도 장차 최고 요리사를 꿈꾸는 고등학생들로 대회장은 북적였다. 참가종목은 크게 3가지. 한식과 양식 그리고 단체팀이 참가하는 창착메뉴가 있다. 한식은 한식조리기능사를 따기 위한 필수 55가지 요리 중 2가지, 양식메뉴는 33가지 요리 중 2가지가 출제된다. 등번호를 단 조리복을 입고 시험장 앞에 선 학생들은 자못 긴장한 표정. 대회장에 들어가서 과제를 받기 전까지는 어떤 요리가 출제될 지 전혀 모른다. 한식 A조에게 주어진 과제는 북어찜과 지짐 누름적, B조에게는 잡채와 풋고추전이 주어졌다.
양식 A조는 가자미를 주재료로 한 솔모르네와 새우 카나페, B조는 바베큐 폭찹과 콜슬로우 샐러드가 각각 출제됐다. 시험장 여건상 모든 참가자가 한꺼번에 요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주제를 달리해 경영대회를 펼치게 된다. A조와 B조의 요리 주제가 같을 경우, 뒤에 시험을 치르는 B조가 미리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시험장에 들어설 때까지도 어떤 요리를 만들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태. 참가자 대부분은 인문계 고교생들. 3학년이 되면서 직업훈련반을 택해 요리직업전문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상당수는 이미 지난 봄 한식 또는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딴 상태였다. 자격증 준비를 위해서라도 같은 과제의 요리를 수차례 해봤을 터이지만 역시 시험은 시험인지라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대회 주최를 맡은 계명문화대학 식품영양조리과 정현숙 학과장은 "비록 자격증을 딴 학생이 많다고 하지만 전문적인 요리사의 길을 걷기 위한 첫 단추를 뀄을 뿐"이라며 "다만 최근 들어 요리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회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 치열한 경쟁의 순간
80분간 주어진 요리 시간에 맞춰 한식과 양식 A조 경연이 끝났다. 고등학교 중간고사 시험기간과 겹치는 탓에 참가 신청자 중 일부는 출전을 포기했다. 때문에 B조는 A조에 비해 참가자가 훨씬 적어졌다. 양식 B조는 5명이 각축전을 벌였다. 돼지갈비를 이용한 바베큐 폭찹과 양배추 당근을 썰어만든 콜슬로우 샐러드를 80분 만에 만들어내야 한다.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같은 요리를 만들지만 제각각 요리 습관은 다르다. 고기를 먼저 다듬어 소금 밑간을 뿌리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샐러드 재료를 총총히 썰어 찬물에 넣어두는 학생도 있었다.
조리과정과 위생상태도 채점시 주요항목에 속한다. 얼마나 자신있게 재료를 다룰 수 있는지도 요리사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자세 중 하나. 때문에 시험장을 둘러보는 심사위원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학생들은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자주 접하는 돼지갈비지만 오늘따라 질기게 느껴지고 원하는 두께로 잘게 썰리지 않는다. 샐러드 재료를 잘게 썰어가는 칼 놀림이 예사롭지 않지만 평소와 달리 자꾸 손이 떨리고, 굵기도 한없이 가늘었다가 볼펜 마디처럼 굵어졌다가 제멋대로다. 누군가 옆에서 말이라도 걸어주면 조금 긴장을 풀 수 있겠지만 조리시간 80분간 조리장 내에는 발자국 소리와 가볍게 도마를 토닥이는 소리, 그리고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요리를 했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제법 맛깔스럽게 발그레한 바베큐 소스를 타지도 덜 익지도 않은 돼지 갈비 위에 살짝 얹어놓은 뛰어난 작품이 있는가하면 비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작품도 있다.
한식 B조에는 당초 출전 희망자가 대거 빠지면서 단 2명이 요리에 나섰다. 청도고 3학년 김윤희, 군위여고 3학년 정혜선. 윤희는 지난 여름 한식 및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혜선이는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지난 3월부터 같은 요리직업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열심히 자격증 준비를 한 덕분이다. 특히 혜선이는 요리학교에 다니기 위해 지난 봄부터 혼자 대구에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다. 요리사의 길을 걷고 싶다는 말에 부모님도 선뜻 허락해주셨다. 다만 혜선이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널리 알려진 제과 전문가 파티쉐를 꿈꾸고 있지만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현재는 양식 요리도 함께 배우고 있다. 출전자는 2명이지만 오히려 긴장감은 훨씬 크다. 그만큼 요리과정 하나하나에 심사위원의 눈길이 많이 가기 때문. 잡채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썰고 다듬고 볶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윤희는 "앞서 A조 요리 주제가 북어찜이어서 북어를 재료로 한 요리를 만들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요리주제가 나와서 당황했다."면서도 재료를 다루는 솜씨에서 자신감이 넘친다.
수줍음이 많은 혜선이는 재료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다루면서도 칼을 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재료를 썰어갈 때면 고교생답지않게 전문가의 끼가 느껴질 정도다. 잡채를 만드는 중간에 다진 소고기로 속을 채운 풋고추전도 만들어야 한다. 행여 모양이 흐트러질새라 소고기 속을 꽉 채운 반토막 고추를 일일이 손으로 다져가며 튀겨낸다. 마지막으로 계란을 얇게 펴서 만든 황백지단으로 잡채 고명을 얹고나자 마침내 요리가 끝났다. 윤희는 너무 긴장한 탓에 잡채 면발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며 울상이다. 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곱게 채를 썬 채소류와 당근으로 만든 하트 모양 장식으로 접시를 이쁘게 꾸며냈다. 심사위원을 맡은 대구산업정보대학 정외숙 교수는 "전문 요리사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참가 학생들의 마음가짐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며 "특히 요리는 타고난 끼를 일찌감치 발견해서 키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갈수록 요리에 입문하는 학생들의 나이도 어려지고 실력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상은 황수영학생에게
이날 한식과 양식을 통틀어 한 명에게 주어지는 대상은 영남삼육고 3학년 황수영 학생에게 돌아갔다. 당초 남자답게(?) 기계분야 엔지니어를 꿈꿨던 수영이는 엉뚱한 사건으로 진로를 180도 바꾸게 됐다. 집에서 어머니가 전기선을 잘라달라고 부탁하자 엉뚱하게 전화선을 잘라버린 것. 아무리 아직 어리다지만 전기선과 전화선도 구분 못해서는 곤란하겠다 싶어 요리로 진로를 정했단다.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
작년에 두번 낙방 끝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올해는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집이 밀양에 있기 때문에 현재 대구시내에서 원룸을 얻어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수영이는 한식 전문 호텔 주방장이 꿈이다. 한편 단 둘이서 잡채와 풋고추전으로 경합을 벌였던 윤희와 혜선이는 나란히 은상을 받았고, 정화여고 조은일 학생과 경원고 임진환 학생이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 단체팀이 참가하는 창작요리전에는 4개 팀이 경합을 벌인 끝에 대구자연과학고 2학년 전영아, 조은혜, 정효주, 우연정 팀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들은 직접 꾸민 레시피로 삼색약식, 닭 야채말이, 밀전병말이, 대합해물 야채찜 등을 선보여 1등을 거머쥐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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