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둔탁한 전기음이 울렸다. '파울' 처리된 투구다. '어프로치 선'을 넘은 것. 공을 던지기 전에 손으로 더듬어 어프로치 선을 확인했지만 '아차'하는 순간 넘어버렸다. 재차 발걸음을 세며 레인 구조를 몸 곳곳에 담아둔다. 던진 공이 레인을 벗어나 거터(Gutter)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몸은 볼링경기 내내 12시 방향을 기억해야 한다.
몸의 기억을 최대한 활용해 볼링을 치는 이들의 눈은 검은 안대로 덮여 있다. 시각을 맡은 눈동자를 대신해 몸이 오감에 활용된다. 다시 한 번 가이드레일을 잡고 심호흡을 한다. 볼링공을 핀으로 던지기까지 2.5m의 도약거리만큼은 1m 남짓한 높이의 가이드레일이 '흰 지팡이' 역할을 맡는다. 가이드레일을 한 손으로 잡고 전진, 공 놓을 자리를 짐작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즐기는 스포츠 중 하나인 볼링대회가 18일 오후 달서구 상인동 삼우볼링장에서 열려 주목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시지부가 마련한 두 번째 '대구컵 전국시각장애인 볼링대회'. 27개 레인에는 전맹, 약시 등 80여 명의 선수, 5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볼링핀과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시각장애인 볼링은 1993년 대구에 도입된 후 전국적으로 300여 명의 동호인들이 즐기고 있으며 대구 등 전국에서 여러 대회가 열리고 있다. 큰 대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다. 국가대표도 6~12명씩 선발된다. 여자선수의 경우 평균 점수가 120점 대, 남자선수의 경우 130점 대를 얻어야 국가대표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일반인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구에도 50여 명의 동호인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중 6명은 국가대표 경험을 갖고 있다. 최근까지 국가대표로 활약, 세계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박희숙(39·여·전맹) 씨와 탁노균(45·전맹) 씨도 그 중에 포함돼 있다. 이들은 매주 남구 대명동 대덕볼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구력도 6년. 나름의 노하우까지 갖고 있어 이들의 경기를 본 이들은 '심청이 보고 놀란 심봉사'처럼 탄성을 자아낸다.
가이드레일을 잡고 어프로치 선까지 가기 때문에 도약하는 속도가 느린 이들. 호쾌한 투구는 아니지만 정교하게 볼링핀을 쓰러뜨렸다. 스크루볼을 던지는 야구 투수처럼 팔꿈치 안쪽을 몸쪽으로 당기고 공을 받치고 있는 손바닥을 몸 바깥쪽으로 내밀어 특유의 투구폼을 보여준 박 씨의 11.4파운드짜리 공은 비둘기호 열차처럼 느렸지만 볼링핀의 구석구석을 파고 들었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시각장애인볼링대회에서 우승한 박 씨의 도우미역을 맡은 김효은(15·여·도원중 2년) 양은 "저도 볼링을 치지만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이렇게 치는 게 신기하다."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날 첫 게임에서 평소 실력보다 점수가 낮다며 아쉬워했지만 박 씨는 98점을 얻었다.
장애의 특성을 고려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B1) 그룹과 교정이 되지 않는 약시(B2) 그룹, 2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날 경기에는 이상원 장애인볼링팀 국가대표 감독이 경기 진행을 맡았다. 이 감독은 "시설만 좋으면 얼마든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며 "대구에 유능한 선수들도 많고 동호인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장애인들의 스포츠에도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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