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매운맛을 보여주마!"
직장인과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매운맛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매운맛에 대한 '당김'도 차츰 강해지고 있다. 매운맛은 한국인, 특히 대구 사람들에게 친숙하기도 하지만 중독성도 강한 편이어서 최근엔 음식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조짐이다. 대구에서 매운맛으로 입소문이 난 곳과 마니아를 만나 매운맛의 마력을 알아봤다.
▨ 19년동안 얼얼한 맛 고집 '낙지볶음'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 위치한 '오륙도 낙지볶음'.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이다. 19년 동안 매운맛을 고수해 단골손님이 많다. 유난히 매운맛을 좋아하는 대구 사람들도 한번 먹어보면 땀이 송송 맺히고 입안이 얼얼할 정도다. 주인 박순혜(49·여) 씨는 "대구에서 가장 매운 낙지볶음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음식맛이 너무 맵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한창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993년 40대 남자가 이곳에서 낙지볶음을 먹고 사우나에 갔다가 기절한 일도 있었다. "너무 맵다면서 다시는 오지 않는다."면서 울고 간 30대 여성 고객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또다시 이 집의 단골이 됐다. 맵지만 뒷맛이 후련하게 개운했던 맛을 못 잊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운맛은 중독성이 있다.
단골고객의 대부분은 20, 30대 여성이다. 왜 여성들은 매운맛을 좋아할까? 주인 박 씨는 "남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담배나 술로 풀지만 여성들은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푼다."고 분석했다.
매운맛의 비결은 청양고추다. 고추도 기후에 따라 매운맛의 차이가 난다. 날씨가 무더웠던 해에는 고추가 맵고 비가 많이 온 해에는 고추가 덜 맵다. 그래서 단골 고객들 사이에서는 어떤 때는 맵고 어떤 때는 맵지 않다는 투정이 나온다. 하지만 계절별로도 매운맛이 다르다. 여름에는 좀 덜 맵게 요리하고 겨울에는 맵게 내놓는다고 한다. 여름에 너무 매운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짜증이 날 수도 있기 때문. 박 씨는 "진짜 매운맛을 원한다면 겨울에 먹어보라."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밖에 나가면 추운 대구 날씨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웃었다.
웰빙열풍으로 손님들이 순한 맛을 찾으면서 2년 전부터는 순한 맛도 추가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골 고객들이 찾는 것은 매운맛이다. 박 씨는 "단골 고객들이 매운맛을 너무 좋아해서 앞으로도 매운맛을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어떤 맛?=화끈하고 입안이 얼얼할 정도. 20~30대 여성이 단골.
▶비결=육질이 연한 세발낙지와 양념 다대기, 육수. 양념 다대기는 영양산 태양초에 마늘과 참기름을 넣고 숙성.
▶매운 정도=2년 전부터 순한 맛 추가. '오리지널' 맛은 정수리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 겨울에 더 맵게 낸다.
▨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 '동인동 찜갈비'
대구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동인동 찜갈비. 찜갈비가 대구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정통갈비찜 조리법을 따르지않고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매콤하게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유난히 매운 맛을 선호하는 대구사람들의 독특한 입맛이 매운 찜갈비를 개발한 것이다.
찜갈비는 대구대표음식답게 고춧가루를 듬뿍 써서 보기에도 맵다. 마늘과 생강이 범벅이다시피해 외지인들은 지레 겁을 먹는다. 그러나 한번 먹어보면 매운 맛보다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을 잊지못한다.
"엄청나게 맵지는 않은데 먹고나서 느끼는 개운한 맛 때문에 대구에 올 때마다 꼭 찾아와요." 대구 동인동 찜갈비골목에서 만난 고수경(37·서울 신림동) 씨는 자칭 '찜갈비마니아'다. "처음 봤을 때는 신기했어요.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시뻘겋게 버무린 갈비를 보고는 선듯 손이 가질 않았는데 평소 먹어보던 갈비맛과는 다른 매콤한 맛에 금세 빠져들었어요."
아성찜갈비식당의 박연옥(50) 씨는 "여기서는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천연재료만으로 매운 맛을 냅니다."면서 "그래서 매운 맛을 좋아하는 젊은 층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찜갈비도 '보통', '맵게', '아주 맵게' 등의 주문에 따라 매운 맛의 강도가 확 달라진다. 아주 맵게 해달라고 하면 아예 청양고추만을 써서 입안을 얼얼하게 해준다.
박씨는 "맵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며 "약간 매콤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조리하고 있지만 더 맵게 해달라고 하면 청양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매운 맛을 더 한다."고 말했다.
비싼 갈비를 서민음식으로 만들어준 것이 양은냄비다. 돌솥이나 스텐에 조리하면 절대로 동인동찜갈비맛이 나지않는다. 양은의 높은 열전도력이 매운 맛을 갈비에까지 골고루 스며들게 하기 때문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어떤 맛?=마늘과 생강 등이 많이 들어가지만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
▶비결=양은냄비. 열전도력이 높아 매운 맛이 갈비에 잘 스며든다.
▶매운 정도='보통', '맵게', '아주 맵게' 등 3종류. 맵게 해달라면 청양고춧가루를 넣는다.
▨ 단골손님 전국서 찾는 '가오리무침회'
"어는거 자실란교?(어떤 것을 드실랍니까?)"
대구시 북구 원대오거리에 있는 부산식당에서 가오리 무침회를 주문하자 신순분(78) 할머니가 대뜸 되물었다. '디기 매운 것' '중간 것' '안매운 것' 가운데 매운 정도를 고르라는 얘기였다. 이 식당이 매운 가오리 무침회로 알려졌다는 걸 미리 알고 온 터. 중간 매운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디기 매운 것'은 "웬만한 사람은 잘 못먹심더."란 할머니의 얘기가 뒤를 이었다. '디기 매운 것'에는 청양고추가 들어가고, 나머지는 그냥 고추만 들어간다.
이 식당의 주인인 신분석(56·여) 씨는 불고기 식당을 하다 12년 전에 이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가오리 무침회를 주 메뉴로 골랐다. 젤라틴이 풍부한 연골로 구성되어 있는 가오리는 쫀득하고 씹히는 맛이 오돌오돌해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무침회의 맛을 좌우하는 가오리와 고추를 잘 고르는 데 무엇보다 노력과 정성을 쏟는다는 게 신 사장의 귀띔. 매운 맛을 내는 고추는 1년에 수천kg을 사용하는 데 청양고추는 의성, 일반 고추는 영양지역 농가들과 계약재배를 통해 품질좋은 고추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가오리 무침회는 생가오리에 빨간 양념을 버무려 먹음직스럽다. 그 위에 올려진 푸른 미나리도 시각적으로 입맛을 돋운다. 처음엔 매운 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지만 한참 먹다보니 입안이 얼얼하다. 매운 양념에 비벼 먹는 국수의 맛도 일품이다.
"대구에 있을 때 먹었던 가오리 무침회의 매운 맛을 못잊어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지요. 구미나 의성, 고령 등에서 찾아오는 단골 손님도 많아요." 신 사장은 "우리 집에서 가오리 무침회를 배워 다른 곳에 가게를 연 사람들도 많다."며 "매운 가오리 무침회 원조는 우리 부산식당"이라고 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어떤 맛?=신선한 생가오리와 매운 양념의 궁합. 단맛이 감도는 감치는 매운 맛.
▶비결=품질좋은 고추. 농가와 계약재배로 고추를 확보.
▶매운 정도='디기 매운 것', '중간 것', '안매운 것' 등 3종류. '중간 것'을 시켜도 많이 매운 편이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