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어머니·아버지 그리워져

교단에 선 지 37년, 그동안 가을 운동회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37번이나 치렀다. 해마다 교정에서 치르는 운동회지만 올해는 유난히 달랐다. 내 어머니 같은 무의탁노인시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초대하여 가을을 느끼며 어린시절의 추억을 다시 한번 새기고 어머니 그리운 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50여 년 전 나의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어머니는 보자기에 김밥과 고구마를 삶아 넣었고 또 귀한 사이다 한 병도 사오셨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형제와 조카들까지 합하면 모두 여섯 명이 함께한 가족 운동회였다. 맨손달리기에서는 늘 종근이란 녀석과 붙어 1, 2위를 다투다 보니 그녀석이 나의 조에 배치되지 않았으면 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나와 한 조가 되어 달렸는데 역시나 나는 2등을 하였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동네 사람들 덕분에 어머니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용케 어머니를 발견하고 다가가면 어머니는 "잘했다. 목마르제" 하면서 얼른 사이다 한 모금을 마시게 하였다. 당시에는 애향단 경기가 치열하여 학부모들이 동별 명예를 걸고 달리고 넘고 뛰고 하였다. 둘째 형님은 힘이 좀 센 탓으로 모래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50m를 달리는 우리 마을 대표였으며 셋째 형님은 100m 달리기 동대표로 달리는 등 대가족인 우리 가족들의 축제도 이날 함께한 셈이다.

점심시간에 우리 가족은 운동장 남쪽 그늘에 모여 옹기종기 점심을 둘러 먹으며 운동회 이야기에 바빴다. 50여 년이 지난 어린시절의 아련한 운동회 추억이지만 중학교 진학 후에는 한 번도 온 가족이 운동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무의탁노인시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한 운동회에서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아련한 모습이 더욱 그리워졌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환한 웃음이 가을 하늘보다 더 높게 펼쳐졌고 그 옛날 잘 삶은 알밤과 고구마 대신에 간이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였다. 대가족이던 우리 온 식구들이 운동장 한 바퀴 달리는 아련한 추억 속의 운동회 날은 다시 돌아올 리 없지만 올해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초대하여 작은 잔치가 될 수 있는 운동회를 내년에는 더 멋지게 마련해야지 하고 생각해 본다.

오현섭(경북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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