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으로 제법 날씨가 싸늘해져 가는 이 가을이면 마음 설레던 유년시절의 운동회 기억을 빼놓을 수가 없다. 가을향기가 진동하는 10월이면 연중 큰 행사였던 그때 운동회는 지금처럼 세련된 종목의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온 시골동네가 운동회 날은 그야말로 잔치였다.
늘상 허리 한번 제대로 펼 날 없이 일만 하시던 우리 부모님도 이날만큼은 생업을 접으시고 아침부터 어머니는 가마솥에 땅콩이며 밤, 고구마를 삶으시고 별 모양은 없지만 큼지막한 김밥도 둘둘 정성껏 마셨다. 아버지 역시 낡은 가죽껍질에 면도날을 쓱싹쓱싹 문질러 정성껏 면도도 하시고, 나를 포함해서 밑으로 3동생들도 전날 연습해서 누렇게 먼지 묻은 체육복을 밤새 수건으로 말아 세탁해 놓은 것을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학교에 가면 울긋불긋 만국기에다 호루라기를 부시는 선생님들 모습에 벌써 마음은 쿵쾅쿵쾅 뛰고, 친구들이랑 매스게임 연습이랑 달리기에서 누가 우승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느새 운동회 선서가 시작되고, 운동장 양옆과 뒤로는 온 동네사람들이 이날만큼은 세상 고달픔 다 던져버리고 아이들과 한마음이 되어 응원들을 했었다.
점심시간이면 모두들 사 가지고 온 음식들을 골고루 나누어 먹으면서 그동안 적조했던 일상의 안부도 묻고 하면서 결국은 아이들의 운동회이면서 어른들의 참여도 이끌어내는 운동회였다. 뭐니 뭐니 해도 운동회의 절정은 어른들의 달리기였다. 동네별로 건장한 젊은이들과 아줌마들이 뛰는 달리기는 흥미진진해서 상대편이 "퍽"하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역전의 현상에 함성이 터져 나오고, 그래도 끝까지 달리는 주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던 그 가을의 운동회, 오후 늦게야 운동회가 끝나고 달구지를 타고 수건을 쓰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던 그이들은 지금은 호호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을 텐데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 놀았던 유년의 가을운동회가 내 나이 쉰을 넘고 보니 돌아올 수 없는 날들이기에 더더욱 아련함으로 피어오른다.
허계애(대구시 서구 중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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