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대구 동구 신서동 S아파트. 입구에서부터 꽃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노랗고 빨간 국화꽃 화분이 놓인 나무 울타리였다. 향기가 좋다는 야래향나무도 있었다. 타일식 액자도 걸렸다. 나무 울타리 안에는 방치돼 지저분해지기 일쑤인 크고 작은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10개도 넘게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음식물 폐비닐류·폐형광등 수거함에서부터 헌옷수거함까지 종류가 각지각색. 더 이상 혐오구역이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던 한 주민(45·여)은 "악취에다 불결하고 혐오스런 쓰레기통 주위를 예쁘게 단장하자는 주민들의 의견이 모여 꽃 울타리를 만들었다."며 "보기에 좋고 꽃향기도 좋아 쓰레기 버리는 일이 이젠 고역이 아니다."며 웃었다.
아파트가 쓰레기와의 전쟁이 아닌 화해를 선포했다. 지저분한 쓰레기 수거함이 외진 곳에 방치돼 있는 곳과는 달리 이 아파트에는 모두 4곳 쓰레기 수거함 주위에 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환경친화적인 공간으로 가꿨다.
쓰레기통 울타리는 주민들의 아이디어. 주택의 마당처럼 아파트 단지를 꾸며보자는 주장에 쓰레기통 주위를 단장해보자는 의견이 합쳐졌다. 디자인도 주민들이 직접 했다. 주민들이 목수를 뽑았고, 인터넷을 통해 재목과 화분을 싸게 샀다. 직접 꽃을 구입해 심었다. 울타리 4곳을 만드는데 1천10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아 가구당(5개 동, 588가구) 9천 원 정도만 부담했다.
아이디어를 낸 김채환(48·입주자대표) 씨는 "쓰레기통 주위에 벌이 날아들고 나비가 내려앉는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며 "방부제를 칠한 재목이기 때문에 눈, 비에도 끄떡없고 아파트 주부들의 이야기 공간으로도 활용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울타리는 진화를 거듭할 예정이다. 쓰레기 버린 손을 씻고 쓰레기통도 청결하게 할 수 있는 수도시설을 만들고, 비에 젖어 악취를 풍길 것에 대비해 차광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다. 소문이 돌아 아파트 시행사 몇 곳도 벤치마킹을 위해 사진을 찍어갔을 정도다.
주민 유선동 씨는 "하루종일 쓰레기와 전쟁을 치르던 경비원들이 이제는 잔디를 깎고 주차 관리를 해 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며 "주민들끼리 의견을 더 모아 계절꽃을 심고 이름표도 붙여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도록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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