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신나는 음악 속에 대구 도심을 흐르는 신천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은 컬러풀축제, 지나갔지만 하회탈로 소문난 곳에선 탈춤축제, 송이가 많이 나는 곳에선 송이축제. 게다가 사과로 유명한 곳은 사과축제, 포도로 유명하면 포도축제, 고추가 유명하면 고추축제까지 열린다.
겨울이면 눈꽃축제, 봄이면 참꽃축제…. 이렇듯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양한 이름의 지역 축제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1년에 1천 개가 넘는 지역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짬을 내 가보면 주 행사만 다를 뿐 부대행사는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 축제들이 보다 차별적으로 기획되어 보다 신선하게 진행된다면 좋겠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가 보다.
지난 1999년 5월 어린이날. 대구 두류운동장 하늘엔 오색 애드벌룬이 떠있고, 운동장 바닥 한가운데는 집채만 한 대형 모금함이 놓였다. '동전 들고 만납시다!'라는 이색슬로건 아래 '굶는 아이 없는 세상 만들기 범시민 동전모금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이 모금행사지 내용은 참으로 감동적인 '축제 한마당'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IMF체제를 겪으면서 우리 주변에는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허기에 지친 아이들'이 자꾸만 늘고 있었다. 행사장 둘레에는 음료회사에서 이곳에 찾아온 시민들을 위해 무료 시음대를 설치했고, 시내 유명한 빵집에선 갓 구운 빵을 한 차 싣고 와 나눴다.
운동장 한가운데선 갖가지 흥미로운 게임 판이 어른 아이들을 둘러 세웠다. 소박하게 차려진 무대에선 자원봉사자 공연팀들이 하루 종일 돌아가면서 흥겹게 무대를 채웠다. 무대 아래엔 돼지저금통을 든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부모님과 함께 저금통을 안고 온 어린 아이들, 중·고교생들은 학교에서 모아온 성금 자루를 쏟아 놓았고, 경로당에서 오신 어르신들도 동전 통을 보탰다. 가족끼리 찾아온 사람들은 행사장 구석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이 '사랑실천'의 현장을 감동 속에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같이 좋은(?)' 어린이날, 놀이공원이나 소문난 음식점 말고 이렇듯 소박하고 차분하게 마련된 행사장에 이처럼 많은 시민들이 모여서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사랑의 잔치를 베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본부석에선 '어린이날'인 이날을 '결식아동 사랑의 날'로 삼는 선포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선 '더 이상 이 땅에 끼니를 굶어 허기에 지친 아이들이 없도록'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결식아동사랑헌장'이 채택됐다.
이날 행사는 '동전'모금 행사였지만 만 원짜리 '종이돈'도 많이 모였다. 하지만 행사 진행요원들은 "누가 얼마나 '많은 돈'을 내고, 또 '돈'을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 아닌가는 처음부터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라면서 "시민들과 더불어 대형 모금함에 모으고자 한 것은 '큰돈'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부모님 손잡고 이 행사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돈'을 냈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이웃사랑'이라는 이름의 고운 씨앗을 하나씩 얻어서 저마다의 가슴 속에 정성껏 심은, 매우 교훈적인 자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해마다 열겠다던 그 '빛나던' 축제는 그해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 그늘진 구석구석에는 '어려운 아이들'이 아직도 많이들 있다는데 올해도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즐기며 구경하는 축제'만 보인다. 이현경 밝은사람들-홍보실닷컴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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