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主夫시대

'불량 주부'라는 제목의 TV드라마가 있었다. 잘난 것 없이 큰소리 쳐대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잘될 턱이 만무하다. 그러자 똑똑하고 야무진 아내가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돈을 벌 테니 당신은 집을 지키라"고. 자존심 상해하던 남편도 결국은 눈물을 머금고 앞치마를 두른다. 그리고 온갖 시행착오 끝에 점차 유능한(?) 주부로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실직 가장이 넘쳐나는 현실을 반영한 이 남편 주부 도전기는 괴로운 현실을 코믹하면서도 긍정 코드로 극화해 공감을 샀다.

아내 대신 집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살림을 떠맡는 '專業主婦型(전업주부형)' 남성이 급증세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경제활동 인구 중 육아'가사 활동을 하는 남성이 15만 1천 명으로 집계됐다. 초등학교 미취학 자녀를 돌보기 위해 집에 있는 '육아활동 종사자'가 5천 명, 초교 이상 자녀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거나 가사를 돌볼 책임이 있다고 답한 '가사활동 종사자'가 14만 6천 명으로 나타났다. 주목되는 점은 이처럼 주부-가장의 전형적 패턴을 벗어난 위치전복형 '主夫(주부)'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 1만 명당 10.6명에서 2004년 13.5명, 2005년엔 12.1명으로 약간 주춤하더니 2006년엔 15.1명으로 훌쩍 뛰어올라 3년 새 42.5%나 늘어났다.

물론 실직 남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주부 노릇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여성들의 고소득'전문직 진출 증가와 자녀 양육 문제, 거기다 최근의 여성 연상 커플이 많아지는 사회 추세 등이 육아'가사활동 남성들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한다.

영국의 칼럼니스트 케이트 멀비는 최근 선데이 타임스에 "현대 여성은 '베타 남자(beta male:좀 덜 벌고 덜 똑똑해도 성공한 아내를 이해해주는 남자)'를 원한다"는, 꽤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실었다. '남녀 간 전쟁에서 남성이 항복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던 助演(조연)이나 內助(내조) 역할을 남성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들이 부엌 근처에만 가도 기겁하는 우리네 부모세대들이 상당히 혼란스러워할 만한 시대가 됐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