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함께 살려면...'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교육 문제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현재 추세라면 그들이 앞으로도 사회 언저리를 맴도는 '이방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0, 30년후 우리 인구의 10% 정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해부터 정부 지원과 사회적인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지만 이들의 피부에 와닿는 결과물은 아직까지 많지 않아 갈 길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문제는 예산?
"돈이 있으면 더 잘할수 있을텐데…."
경북도의 한 관계자는 "산간 벽지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교통비 지원을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차상위계층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 당했다."며 "관련 예산과 프로그램이 크게 늘어나야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다문화가정 지원에 눈을 돌린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그런만큼 시행착오가 많고 주먹구구식 정책도 눈에 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전국에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설립했고, 교육부는 전국 농촌지역 초교에 다문화가정 시범학교를 선정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직접 지원보다는 교육 인프라 확충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이다.
여성가족부 경우 올해 41억 원의 예산을 내년에 222억 원으로 증액하고 현재 38개의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내년에 80개로 늘릴 계획이다. 그렇지만 관련 예산의 상당 부분은 센터 운영비로 사용돼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관계자는 "센터당 한해 4천300만 원 정도를 지원받고 있지만 이 돈은 인건비를 주고 나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며 "내년에는 센터 수만 늘어날 뿐, 지원액은 비슷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센터를 이용하는 결혼이주여성은 전체의 20%가 채 되지 않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 전국에 12개의 시범학교를 운영하는 등 14억 원의 관련 예산을 집행했고 내년에도 비슷한 수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 예산 14억 원과 전국 16개 시·도의 지방비 14억 원을 합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규원 대구시의원은 "각계각층에서 농촌총각 장가 보내기에만 급급했을 뿐, 이들 가정과 자녀들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며 "사회 약자계층이 많은 다문화가정에 생계, 교육 문제를 떠넘기지 말고 국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경북도가 정부보다 낫다?
다문화가정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지자체는 경북도다. 지난해 다문화가정 실태조사를 전국 최초로 벌인데 이어 각종 시범사업 평가에서도 잇따라 1위를 차지했다.
올해에도 경북도는 지역 대학과 연계해 지원사업을 벌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생 선생님들이 가정을 매주 방문,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쳐주고 같이 놀아주는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조자근 경북도 여성가족과 담당은 "반응이 너무좋아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김관용 지사가 다문화가정 문제를 도정 목표로 삼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경북도는 내년에도 정부 지원과는 별도로 지방비 2억 원을 들여 20개 시범학교를 선정, 각종 지원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정부는 현재까지 다문화가정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내놓은 적이 없다.
◆교육이 중요하다.
"애들이 얼마나 잘 어울려 놀던지…."
지난달 고령군 우곡초교 운동회에 다녀온 경북도 관계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어울려 운동회를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고 했다. 우곡초교는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가 지정한 시범학교로 다문화가정 이해하기, 단계별 한글교육 등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2일 김천시 아포시립어린이집에서 만난 다문화가정 2세인 지원(가명), 수희(〃)는 무척 활달했다. "선생님! 간식 언제 먹어요?(지원)" "선생님! 밖에 나가서 놀아요(수희)"
전현정(33) 교사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처음 왔을때 말수가 적었는데 지금은 말괄량이가 됐다."며 즐거워했다. 아포시립어린이집은 다문화가정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국에서 몇 안되는 보육기관이다. 이인숙 원장은 "교사·학부모들이 다문화가정을 보다 잘 이해할수 있도록 자체·외부 연수 기회를 늘렸고 아이들끼리 잘 어울리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열고 있다."고 했다.
우곡초교와 아포시립어린이집의 사례는 실효성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최준호 연구원(대구경북연구원)은 "언어 체계는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체계적인 교육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 자원봉사자가 아닌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다문화가정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상황에서는 2세들이 정상적인 한국인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홍덕률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 인프라 확대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동반자로 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해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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