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골수성 백혈병 딸 간호 정정이씨

"욕심 버릴테니 착한 우리 딸 살려주세요"

▲ 정정이(45) 씨가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대구 한 병원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딸을 안타까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정정이(45) 씨가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대구 한 병원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딸을 안타까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무균실 문 앞에서 딸이 걸어나오길 기다립니다. 오늘도 무사하기를, 아무 탈없이 혼자 힘으로 걸어나올 수 있기를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마음이 작아집니다. 안 먹고 아껴 잘 살아보겠다는 부모 욕심 때문에 아이가 저렇게 된 것 같아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욕심을 버릴 테니 이제 그만 살려달라고 가슴을, 머리를 쥐어뜯는 심정으로 하염없이 기도합니다.

제 딸아이 (신)다영이는 이제 스물 한 살의 꽃다운 나이입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장애인을 돌보며 살고 싶다며 4년제 대학의 작업치료학과에 당당하게 합격했지요. 유쾌하고 밝고 건강했습니다. 누가 봐도 예쁘고 멋있는 대학생이었지요. 어느날 아침, 밥을 먹으며 "엄마, 우리 참 행복하다 그지?"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행복은 순식간이더군요. 그 아래 숨어 있던 불행의 그림자가 우리 가족에게 뻗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경남 창원의 한 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던 남편(50)은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해 퇴직을 강요받았습니다. 받은 퇴직금과 은행 대출, 전셋값을 안고 상가가 딸린 2층 독채를 구입했지요. 이 상가에 식당을 하려고 남편은 요리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자 다영이는 대학에 다니며 근처 교복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창고에서 교복을 나르고 큰 짐을 짊어지고 맥없이 돌아오던 다영이는 "그래도 괜찮다."며 오히려 저희들을 위로했지요.

그러던 지난 3월, 다영이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교복사에서 일하며 심한 먼지 때문에 편도선염에 걸리기는 했지만 큰 병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목욕탕에서 아이가 맥없이 쓰러지기 전까지 그렇게 큰 병이 아이에게 있다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건, 다영이를 병문안 온 친구들의 얘기였습니다. 하루 몇천 원 밖에 주지 못한 용돈으로 다영이는 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어요. 비싼 교재값, 교통비, 화장품이며 옷까지 아이는 어려운 형편을 이해하고 먹지 않고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집에서 잘 먹기 때문이라고 했다는군요.

하지만 이제 은행에서는 대출금 2억 원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하려고 합니다. 지난 10월까지 아이의 수술비며 치료비로 사채 6천만 원을 빌려 썼습니다. 아이 아빠가 버는 100만 원 남짓한 월급은 고스란히 사채 이자로 빠지고 있고, 저당잡힌 집은 내놓은 지 몇 달이 지나도 새 주인이 나타나질 않네요. 아이가 아프고 형편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자 싸게 물건을 구입하려는 부동산업자들의 연락만이 끊이질 않고. 동사무소에서는 집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자도 될 수 없다고 하는데 벌써 아이의 치료비로 집값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습니다.

다영이는 자가골수이식 수술을 하고 무균실에 누워있습니다. 식도가 헐고 혈소판이 떨어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집을 사고, 큰 식당을 벌려 우리 가족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는 욕심이 아이를 저 지경으로 만든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10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살 때는 그저 돈이 없어도 그렇게 행복했는데 말입니다. 오늘도 남편은 술에 취해 자기 탓을 합니다. 당신까지 이러면 우리 진짜 못산다고 어루고 달래고···.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부둥켜 안고 행복을 그리워해야 하는지···.

오늘 새벽, 저는 또 성당에서 기도를 합니다. 작은 단칸방 아래, 된장찌개 하나에 김치 한 점 올려놓고도 "행복하다."고 말했던 다영이의 그 음성을, 그 모습을 다시 듣고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제 목숨이라도 좋으니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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