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정직이 최선

지난해 겨울이었다. 그날은 수술하는 날이어서 하루 종일 수술을 하고 연구실로 막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같이 수술을 했던 전임의(임상강사)였고 긴장한 목소리로 조용히 "문제가 생겼습니다."라고 했다. 외과 의사들이 수술 뒤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인 만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기구를 정리하다 보니 복부견인기(수술 중 배를 벌려 놓는 기구)의 작은 부품 하나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사실은 이쯤 되면 금방 상황파악이 된다.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그저 기구 부품이 없어진 것만으로는 이렇게 집도의사에게 연락이 오진 않는다. 수술실 간호사가 기구회사에 새로 요청하면 그만이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전임의가 대답했다. "(배를 닫기 위해)철거할 때 환자분의 복강 내로 떨어져 들어 간 것 같습니다." "확인은?" "복부 엑스선 촬영에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내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꺼내야지… 환자분은?" "조금 전에 병실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수술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내가 책임자니 내가 알아서 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 머릿속이 아득하고 눈앞은 깜깜해진다. 곤란한 처지에 놓이면 헤쳐 나오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듯 나의 경우도 이제껏 늘 도움이 되어준 내 나름의 방식이 물론 있다. 크게 어렵지도 않고 단순 명쾌한데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즉 '정직이 최선'이라는 믿음과 경험이다. 바로 병실로 가서 마취에서 막 깨어난 환자분과 보호자를 대면하였다. 수술은 잘되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회복도 잘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절대 놀라지 말고 들어주셔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환자분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희들의 실수로 마지막에 배를 닫을 때 기구의 작은 부품 하나가 선생님의 배 안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대로 두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다시 꺼내야 하는데, 물론 매우 안전하게 꺼낼 자신과 기술이 저희들에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수술실로 가셔서 다시 한 번 마취를 하셔야 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환자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교수님이 다른 어떠한 이유를 둘러댔더라도 저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그처럼 정직하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무척 놀랍고 차라리 더 믿음이 갑니다. 금방 또 마취해도 정말 안전하겠지요?"

그래서 바로 수술실로 가니 마취과장 김 교수가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 교수가 환자분께 다시 한 번 안심하라고 소개와 설명을 한 뒤에 마취를 했고, 우리는 방금 꿰맨 상처라 일부만 봉합을 풀어서 바로 꺼낸 뒤 다시 봉합해 짧은 시간에 수술을 마쳤다. 환자분은 아무런 문제없이 잘 회복되었고, 원래의 일정대로 퇴원했음은 물론이다. 다만 퇴원할 때 선물까지 주시는 바람에 내가 너무 곤란했던 기억에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요즘도 신문지상에는 의료 분쟁의 기사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꼬이고 또 꼬여버린 의료 분쟁의 예들을 보면 결국 애초의 진실은 수많은 오해들로 인해 저만치 묻혀버리고, 그 오해의 배경에는 언제나 '불신'이 버티고 있기에 참으로 안타깝다. 무턱대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풍조에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약간이라도 감추었을 때 불신은 더욱 증폭된다. '정직이 최선'이라는, 역경을 헤쳐 가는 나름대로의 방식이 매정한 현실에서 앞으로도 계속 통할 것이란 확신은 사실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로서는 딱히 더 나은 방법을 알 수가 없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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