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정재익
엷은
늦가을 하늘이
조용히 무너져 내린다
끝도
시작도 없는
그냥 그 허전한 공간
문득 내
어깨 너머로
실려오는 이 충만.
늦은 가을 하늘 한 폭을 내겁니다. 喜壽(희수)를 넘긴 연치에도 여전히 현역이신 시인. 이즈막에 즐겨 쓰시는 중절모에도 사무치는 가을빛입니다. 더러 댓진 냄새가 난다고 할 정도로 완연한 선비의 풍모가 묵은 동구 밖 한 그루 회화나무 같습니다.
정서를 풀어내고 되받아 맺는 품이 말 그대로 자연입니다. 그 자연이 읽는 이를 고담한 사유의 세계로 이끕니다. 시와 인생의 진솔한 교감이 세계에 대한 긍정의 눈을 열어간다면, 그 이면에서 다스려낸 회한의 정서는 넉넉한 관조의 깊이에 닿습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엷어지는 하늘. 엷어질 대로 엷어져서는 우리네 이맛전이나 눈썹 위로 조용히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 하늘. 끝도 시작도 없는 공간의 '허전함'이 어깨 너머로 실려오는 '충만'으로 바뀌기까지 참 범속치 않은 정서의 굴곡을 거쳐 왔을 테지요.
시인은 시방 가을 하늘 앞에서 어쩌지 못할 생의 경사를 느끼며, 지난 삶의 내력을 조용히 반추합니다. 마치 옷자락을 들어 하늘 저편의 말씀을 다 받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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