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이정의 독서일기] 사람에게 가는 길/ 김병수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극한 상황에 내몰릴 때,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아무리 애써 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때 거기에서 얼른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현실이나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자신의 생각을 바꿔보라고. 생각의 필터를 새로운 것으로 갈아 끼우라고. 그것이 고뇌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집착할수록 점점 더 옭아 매여지는 생각이라는 사슬. 오로지 하나의 길뿐이라는 극단적인 고정관념의 벽. 이것을 깨고(覺) 나오는 것을 동양에선 예로부터 최고의 공부로 쳤다. 인간의 궁극적인 '해방'과 '자유'는 오로지 그 길 뿐이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신의 '생각 바꾸기'가 아닐까 싶다.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면 우선 몸의 환경을 바꾸어보면 어떨까. 익숙한 공간에서 몸을 빼내어 낯선 곳에 가져다 놓으면 마음도 바뀌어지지 않을까. 어쩌면 현실 도피나 도망인 것 같아도 그렇게라도 해서 생각이나 마음이 변화되어 차츰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게 된다면 이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경기도 팔당에서 유기농업을 하던 '농부'이며, 농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던 '농민 운동가'이기도 한 저자는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을 버리고 배낭 하나 메고 길을 떠난다. 정처 없는 떠남이 아니라 세상 곳곳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절망하면서도 결국 '사람만이 희망'인 것일까.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마을 네덜란드 휴메니버스티. 인간에게 차별 당하고 소외되어 아직도 슬픈 관습에 빠져 있는 인도 불가촉 천민들의 공동체. 경쟁과 상업화를 바탕으로 한 서구 스포츠들보다 협동을 바탕으로 한 전통놀이를 가르치는 인도의 요한 쿠르이프 교육센터. 모든 생명과 인류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유기농업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준 덴마크 스반홀롬 공동체.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며 세상의 평화는 제 마음의 평화에서부터 시작됨을 가르치는 플럼빌리지. 진지한 토론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평화운동과 비폭력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영국 우드부룩 퀘이커 공동체....

저자의 순례는 아마존 밀림의 산토 다이메 공동체에서 절정을 맞는다. 아마존 숲을 걷는 영성여행에 동참하면서 우주와 자연과 인간과 뭇 생명이 하나임을, 추상적인 언어였던 '자유와 조화'를 현실세계에서도 누릴 수 있음을 체험한다. 세상은 보이는 관계보다 보이지 않는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한데도 현대사회는 보이지 않는 관계의 핵심인 영(Spirit)을 무시한다고, 그것이 인류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였음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저자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어느 공동체가 가장 마음에 드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공동체가 좋았다. 그러나 어느 공동체도 내게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곳이 어디든 사는 건 다 비슷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충돌과 반응, 절망과 희망, 갈등과 화해가 서로 어우러져 있을 것이다. 결국 그 속에서 배우고 반성하고 깨닫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인 모양이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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