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윤조의 수다수다] 결혼

가을을 감동으로 몰고 가는 단풍의 붉은 마음과

헛됨을 경계하는 은행의 노란 마음을 모아

내 눈빛이 사랑이라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 마음속으로 숨어버린 그 날 이후

내 모든 소망이었던 그 한마디를 씁니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푸른 하늘에

구름을 끌어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대의 사랑에 대하여 쓰며

천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날들입니다.

(조기영 시인 '청혼' 중 일부)

결혼이 위의 시처럼 낭만으로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한떨기 꽃을 건네듯 조심스럽게 청혼을 하고, 이런 낭만에 부풀어 한껏 불타오르는 가슴으로만 결혼을 맞이하고…. 결혼생활이 이어질수록 사랑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구름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기분일 수 있다면 세상은 정말 행복한 이들로만 가득 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란 이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혼기가 꽉찬 미혼 남녀들은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빨리 시집'장가 안가냐?"는 주위의 독촉에 마음만 급해지고, 짝을 찾는 일이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할수록 '나는 왜 안될까?'라는 자괴감만이 깊어진다.

평생의 베필을 만났다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예단과 혼수문제부터 시작해 신혼 초 상대방 기선제압 문제까지…. 결혼은 동화의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미혼 남녀들이 가지고 있는 결혼에 관한 이상과 현실을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봤다.

올해 34살의 직장인 D씨. 증권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대구바닥에서는 '나름 잘 나가는 직장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증권사에 근무하는만큼 일찍부터 재테크에 눈을 떠 모아놓은 재산도 꽤 된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었으니 여성들에게는 영 인기가 없다는 점이다. 가끔은 '학창시절 좀 더 열심히 공부해 '사'자 붙은 직업을 가졌다면 여성들이 이렇게 나를 괄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푸념도 들지만, 이젠 지나간 일일 뿐이다.

일찍 장가간 친구녀석들은 벌써 아들 낳아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는데, 그에게는 아직 장가갈 길이 아득하기만 하니 말이다.

D씨가 분석하는 '장가못가는 원인'은 바로 짧고 뚱뚱한 몸매에 장남이라는 점. 직업과 금전적인 부분은 자신의 노력으로 어떻게 개선해 볼 여지가 있지만 '외모'는 의지로도 해결 불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외모의 단점을 성격으로 극복하고 한 때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남을 가졌던 여성도 있었지만 그녀는 '장남'이라는 점을 못견뎌 했다. 물론 다른 조건들이 걸림돌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녀가 떠나면서 남겼던 말은 "맏며느리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기는 싫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왜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을까?

'배우자감을 물색하면서 자신의 과거 행적 중 가장 후회스러운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성의 30%가 '공부소홀'을 첫손에 꼽았고, 다음으로 '결혼에 대한 관심 부족'(15%), '이성에 대한 이해 부족'(13%), 화술'유머 미흡'(11%)의 순으로 응답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학벌과 성적이 직업을 결정짓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여성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혼에 대한 관심부족'(35%)이 가장 많은 응답을 차지했고, '얼굴 호감도 관리 부족'(15%), '공부소홀'(14%), '성격'기질 비호감'(13%)의 순으로 조사됐다. 김윤정(31)씨는 "주위 동생들을 보면 20대 중반의 나이에 선을 보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 요즘 선을 보다보면 왜 좀 더 일찍 결혼에 관심을 두지 않았나라는 후회가 밀려든다."며 "아무리 성격이 좋고, 괜찮은 직업을 가졌다하더라도 일단 여성은 나이가 많으면 호감을 얻기 어렵다."고 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는 남녀의 답이 같았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답은 '얼굴 생김새'(남성의 32%, 여성의 28%)였고, 다음으로는 '신장'(남성의 22%, 여성의 14%), '장남이나 장녀'(남성의 14%, 여성의 23%) 등의 대답이 2, 3위를 번갈아 차지했다.

또 '가을, 솔로 탈출을 위해 준비 중인 것은?'이라는 질문에 남성은 '화술강화'(25%), '다이어트'(23%), '연애기술 습득'(20%) 등의 순으로 응답했고, 여성은 '다이어트'(35%), '피부손질'(28%), '화술강화'(12%)의 순으로 답했다.

비에나래의 이 경 상담실장은 "재미있는 사실은 외모에 대한 불만이 여성보다 남성이 더 높게 나타난 점"이라고 지적하고, "남성의 경우는 직장과 능력이 배우자를 결정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부소홀'이 후회스럽다는 응답이 많고, 여성은 나이가 들 수록 만날 수 있는 대상의 폭이 현저히 좁아지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관심 부족'을 첫손에 꼽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좀 더 나은 배우자를 구하는데 최대의 걸림돌은?

이제와 후회해봤자 늦은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괜시리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나는 왜 좀 더 나은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까?", "이럴줄 알았으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 성형수술이라도 받아볼걸…."

전국 초'재혼 대상자 1천1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성들은 '본인 직업'(35%)를 최대의 걸림돌로 꼽았다. 다음으로는 '외모'(28%), '성격'(14%)이 뒤를 이었으며 '결혼 후 부모와 동거'(7%)라는 응답도 있었다.

여성들은 외모에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외모'(23%)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직업'(22%), '학력'(14%), '부모 신분'(14%) 등의 순으로 답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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