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베스트 셀러' 너의 뒤가 궁금해

출판사는 언제나 베스트 셀러를 꿈꾼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가 되는 책은 극히 드물다. 출판 일주일 후에 서점 판매대에서 사라지는 책이 부지기수이고, 아예 대형 서점 근처에 가보지 못하는 책들도 많다. 시집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책도 3천 부를 팔기 어렵다. 그 와중에 10만 부, 20만 부를 넘어 70만, 80만 부를 기록하는 책들도 있다. 1970년대 80년대는 100만부를 넘기는 책들도 있었다.

베스트 셀러는 당대의 사회트렌드를 이해하는 도구다. 베스트 셀러의 키워드를 꼬집어 이야기는 어렵지만 그 안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그래서 출판계에는 이른바 '베스트 셀러 공식'도 존재한다. 출판인이라면 이 공식을 누구나 안다. 물론 공식을 아는 것과 베스트 셀러를 만드는 것은 별개다. 기획부터 베스트 셀러를 만들기 작전에 돌입해서 성공하는 책도 있고, 그럼에도 실패하는 책이 있다. 우연히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책들도 있다.

베스트 셀러는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또한 베스트 셀러는 좋은 책인가? 이른바 '사재기'로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책들은 없는가? 대형서점 '베스트 셀러' 코너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한 책들, 그 책들 뒤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베스트 셀러의 공식

몇 권이나 팔면 베스트 셀러라고 할까? 출판인들은 대체로 소설은 최소 3만에서 5만부, 인문서는 1만부 정도라고 보고 있다. 특급 베스트 셀러의 부수는 갈수록 줄었다. 70, 80년대는 100만 부를 팔아야 특급 베스트 셀러였다. 그러나 90년대는 30만부, 2000년 이후는 10만부 이상이면 특급으로 본다. 그만큼 책이 덜 팔린다다. 베스트 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 입소문

몇 해전까지 베스트 셀러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입소문'이었다. 200만부를 기록한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베스트 셀러가 됐다. 그러나 요즘은 '입소문'으로 책이 뜨기는 무척 어렵다, 는 것이 출판인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출판인들은 "출간 후 1, 2주일 안에 책의 운명이 대체로 결정 난다."고 말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가 좋은 예다. 이 책은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출판 초기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사태 당시 이 책을 언급하면서 '칼의 노래'는 이른바 '국민도서'가 됐다. 이전까지는 비교적 문학을 즐기는 계층에서만 회자되던 책이었다. 요즘은 입소문이 아니라 마케팅이다. '마케팅만으로 책을 띄울 수는 없지만, 전폭적인 마케팅 없이 책이 뜨기는 매우 어렵다.'는 출판인들의 의견이었다.

△ 유명 저자의 힘

베스트 셀러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칼의 노래'로 인기를 얻은 김훈의 '남한산성'은 출간과 더불어 베스트 셀러가 됐다. 출간 전 예약 주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로 공인받은 공지영 작가는 출판인들 사이에서 '최소 30만부'를 보장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빅 타이틀 외국도서의 경우 계약금이 천정부지로 뛰기도 한다. 국내 한 출판사는 한국에서 340만부가 팔린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과 30만달러 선에서 새 책 출판 계약협상을 추진하기도 했다. 협상설이 돌던 올해 상반기 댄 브라운의 새 작품은 줄거리도 제목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도 출판사는 '올인'한다. 유명작가의 힘을 믿는 것이다.

소설 '개미'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파피용'은 올해 7월 출간 즉시 베스트 셀러 1,2위를 다툴 만큼 강력한 파괴력을 보였다. 대형서점 판매대는 온통 '파피용'으로 뒤덮였다. 유명작가는 '베스트 셀러'를 보장하는 힘이다.

△ 출판사의 아이디어

출간 1년 만에 100만부가 팔린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출판사(위즈덤 하우스)의 기획이 빛을 발한 대표적 예다. 출판사는 책을 출간하기 전부터 온라인 서점,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통해 책 내용 중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공개하면서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선물용으로 적합하다는 마케팅 포인트를 설정해 선물을 많이 주어야 하는 위치에 선 사람들을 공략했다. 위즈덤하우스 김현종 홍보팀장은 "무명 저자가 쓴 책이지만 기획마케팅을 통해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외에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도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등은 이른바 2535 싱글여성을 겨냥해 성공한 예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이 문학의 소비주체로 떠오른 점을 감안해 그들의 입맛, 그들의 관심사에 집중한 예다.

△ 타이밍.타이틀.타깃

출판계에서는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공식으로 흔히 '3T'를 이야기한다. 즉 타이밍(timing), 타깃(target), 타이틀(title)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일대기를 담은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바로 이 3T 전략으로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다. 이 책은 주인공이 UN총장이 되자마자 출간돼 타이밍을 맞췄다. 또한 제목(타이틀)을 '반기문처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타깃(대상)을 잘 설정했다. 자식을 반기문 총장처럼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공략한 것이다.

많은 출판인들은 단행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로 아동'청소년 도서를 지목한다. 이 점은 '잘 팔리는 분야', 즉 타킷을 정확하게 겨누지만 씁쓸한 맛을 남긴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은 수요자(독자)와 소비자(구매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구매자와 독자가 다르다는 것은 부모들은 자신이 읽을 책이 아니라, 자녀가 읽었으면 하는 책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베스트 셀러는 좋은 책?

출판인들은 베스트 셀러를 꿈꾸지만 베스트 셀러가 좋은 책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휴먼앤 북스 하응백 대표는 "베스트 셀러는 읽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문학 평론가이자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그는 "베스트 셀러는 그게 그거다. 시간 낭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른 책들 중에 '결함'을 가진 책들은 많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일단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르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책을 고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 사재기로 베스트 셀러 만들기

출판사들은 베스트 셀러를 만들기 위해 '사재기'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일단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르면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를 통해 진짜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먼 엔 북스 하응백 대표는"일부 출판사들의 사재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면 서 "정가 1만원인 책을 60% 가격에 대형서점에 공급하고 이 책을 다시 1만원에 사들이면 4천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2천만 원으로 5천권을 사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시중 5개 서점에서 일주일에 5천 권을 사들이면 베스트 셀러 10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 일단 10위 권에 진입, 베스트 셀러에 오르면 각종 매체가 재유포하고, 소형 서점들의 구매 기준이 되기 때문에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재기의 방법도 다양하다.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시켜 대형서점을 돌며 사들이는 방식은 이미 고전이다. 근래에는 인터넷을 이용한다. 출판사는 먼저 대형 서점 회원인 사람들 중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 이 서평단에게 일정한 기간 안에 책을 사게 하고, 온라인 서점에 서평을 올리게 한다. 책을 사고 구매 증거자료를 제출하면 돈을 돌려준다. 서평단에 가입한 사람은 자기 돈으로 책을 사지만, 결국 돈을 돌려 받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에 서평을 올리는 조건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공짜로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책을 받으면 대충 읽고 칭친일색의 서평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하응백 대표는 "이는 명백히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지만 불법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출판사측에서 소비자 반응을 파악하기 위해 책을 보냈다, 라고 하면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단기간에 칭찬 일색의 서평이 무더기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독자들은 이 서평단의 감상문을 읽고 책을 구매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 외국의 베스트 셀러 집계 기준=1895년에 창간된 미국의 문예비평지 '북맨 Bookman'이 세계 최초로 베스트셀러 목록을 작성해 게재했다. 전국 서점의 서적판매기록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이후 유사한 목록들이 여타의 문예잡지와 대도시의 신문에도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는 베스트셀러 목록은 '퍼블리셔스 위클리 Publisher's Weekly'지(誌)와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지의 목록이다. 영국에서는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 The Sunday Times' 가 가장 권위 있는 목록으로 여겨진다.

△ 베스트 셀러의 예외=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성서, 우편판매 책들은 보통 베스트셀러 목록을 작성할 때 제외된다. 영어 생활권에서 성서의 판매에 필적할 만한 책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남북전쟁과 전후 복구기간 동안의 남부를 배경으로 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6)가 한때 미국에서 성서 판매를 앞지른 정도이다.

△ 우리나라 베스트 셀러 집계 기준=주로 교보문고와 출판인회의(우리나라 300여개 단행본 출판사 대표들로 구성)집계를 말한다. 매주 혹은 매월 단위로 집계한다. 베스트 셀러 목록은 보통 소설, 수필, 비소설,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아동, 종교 등으로 분류되어 매장이나 북 클럽 팜플렛 등에 게재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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