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영화는 만성근육통처럼 늘 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애인은 불치병에 걸리기 일쑤였고, 파란만장한 고생담은 해피엔딩의 교각이기 십상이었다. 늘 상 우는 애인의 울음에 둔감해지듯, 그래서 멜로는 상투적인 장르라 인식되어왔다. 사랑을 현실로부터 멀게 만드는 환상 효과로서 말이다.
설경구와 송윤아가 주연을 맡은 '사랑을 놓치다'는 멜로라는 만성신경증을 급성질환으로 바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놓치다'는 늘 아팠던 그곳이 아니라 우리가 추억이라 부르는 은밀하고 사소한 부위를 건드린다. 멀리 먼 곳에서 볼 수 있었던 '그들만'의 사랑이 아닌 우리의 사랑, 상상이 아닌 과거 속에 묻어 둔 사랑 말이다. 그들, 우재와 연수가 불러낸 사랑은 지독히 현실적인 질감으로 채색된 미묘한 그것, 바로 추억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실연의 고통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우재로부터 시작된다. 10년 전 친구였던 우재와 연수. 그러나 연수에게 우재는 단순한 친구가 아닌 입안에 머무는 사랑이었다. 고백 한 번 못한 채 우재 곁을 맴도는 연수, 그럼에도 우재는 연수의 마음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면회를 핑계로 찾아간 연수를 끝끝내 막차를 태워 돌려보내는 우재. 결국, 그들의 인연은 그 곳에서 끊겨 7 년 후까지 공백으로 남게 된다. 2001년, 우연히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되고, 이혼녀가 된 연수와 삶의 틈바구니에서 전전긍긍하는 우재는 이 우연 앞에서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투신하던 이십대를 지나 훌쩍 삼십대가 된 그들에게 사랑은 이제, 선택으로 다가온다.
대략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사랑을 놓치다'는 한 번 쯤은 사랑에 아파 본 사람에게 더 공감이 갈 법한 작품이다. 사랑이란 심신을 바치는 헌신이라거나 영혼을 움직일 충동이라 여길 시기를 지난 이들. 그러니까 이제 사랑은 습관이거나 호르몬의 부작용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고백인 셈이다. 이는 '사랑을 놓치다'가 사랑의 환상이 아닌 환멸 이후에 다가올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지내는 각각의 일상에 카메라가 더 오래 머무른다거나 어머니의 솔직한 사랑에 묵묵한 시선을 준 까닭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놓치다'의 사랑은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행간에 숨어 있을 법한 사람살이의 한 구절인 셈이다.
영화 '사랑을 놓치다'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현실성이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훌쩍 변해버린 연수를 그저 이혼했다라는 한 마디로 압축하는 대사는 영화의 힘을 잘 보여준다. 구질 구질 설명하거나 부연하지 않고 영화는 그들이 처해있는 삶의 지표를 간단히 제시한다. 그것도 아주 핍진하게. 친구와 연인의 애매한 사이에서 하룻밤 정을 나누고 뒤돌아서는 장면 역시 그렇다. 영화는 한 번의 정사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달라졌나보다 단 한 번의 정사로 그들이 얼마나 달라지기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이루어지지 않을 마음이 두려워 가시처럼 따갑게 삼키는 때가 20대라면 아마도 30대는 새어나올 마음과 말을 단속하는 나이일 것이다. 사랑은 늘 손에 담긴 물고기처럼 담겨 있기보다 빠져나가기 일쑤니까. 그렇게 놓친 사랑의 흔적은 더 강렬한 화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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