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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신문 경영인 퓰리처 사망

현대신문의 정형을 확립하는데 공헌하고 퓰리처상을 제정한 조셉 퓰리처가 1911년 사망했다.

1847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퓰리처는 17세 때 미국으로 이주해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재대 뒤 세인트루이스에서 독일어 일간지 '베스틀리해 포스트' 기자로 활약하다가 이 신문을 사들여 언론사 경영자가 되었다. 1869년 미주리 주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1878년 파산 직전의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와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를 인수해 '포스트 디스패치'로 통합하여 경영에 성공하였다. 1883년 '뉴욕 월드'를 인수했고 자매지인 석간신문 '이브닝 월드'를 창간했다.

퓰리처는 만화와 스포츠 기사, 여성 패션 기사 및 화보 등의 혁신적 수단을 신문에 도입해 신문을 정보의 원천이자 오락의 도구로 만들었다. 또 '뉴욕 모닝 저널'과 선정적인 내용으로 경쟁을 벌여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890년 건강이 악화되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컬럼비아대학에 재산을 기부해 신문학부를 만들었다.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1917년 퓰리처상을 제정, 매년 언론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1933년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발표 ▶1956년 국내 첫 패션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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