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최재목 作 '허공의 얼굴'

허공의 얼굴

최재목

세수하다가 문득 두 손에 든

물을 바라보다가, 물 한줌 쥔 동안 비치다 깨어지고

다시 짜 맞춰지는 나를 보았네, 두 손과 얼굴 사이에서

은밀히 살아남은 허공의 물방울

물 한줌 쥘 동안 비치는 이목구비

그것마저 놓쳐 버리면 낱낱이 분해되거나

세상으로 흘러다닌 얼굴을 보았네

자신을 잊을 때까지 두 손과 얼굴 사이에서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방울, 그러다가 그러다가

당장에 무슨 뾰족한 수도 없이

아주 잊혀져가는 얼굴을 보았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제 얼굴을 제가 볼 수 없다. 천수관음처럼 손가락에 눈을 붙이지 않는 한 제 얼굴을 제가 볼 수 없다. 우습지 아니한가. 제 얼굴도 제대로 못 보면서 우주 너머를 보려 꿈꾸고 있으니.

사람은 제 얼굴을 이미지로만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미지가 실제라고 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이 瞥眼間(별안간 : 눈 깜박할 동안)에 불과한 짧디 짧은 생애를 영원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늘 문득 움켜쥔 세숫물에 진실의 이목구비가 잠시 비쳤다 사라진다.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방울'처럼 사라지는 내 진실한 얼굴. 붙잡아 고정시키고 싶지만 '당장에 무슨 뾰족한 수'가 없으니 '아주 잊혀져 가는 얼굴을' 다만 지켜볼 수밖에.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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