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읽기와 글쓰기] 셋째 마당:제시문 읽기

논제 분석후 제시문 핵심정보 파악

· 다섯째 과정 : 제시문 읽기의 실제-2008학년도 경북대 모의논술고사 인문사회계열

지난주까지 네 번에 걸쳐 전략적인 글읽기에 대한 과정을 탐색했다. 하지만 독립된 하나의 글을 통해 글읽기의 전략적인 과정을 자세하게 살폈기 때문에 실제로 논술고사를 접했을 때 그 모든 방법을 활용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번 주에는 논술고사를 접했을 때 좀 더 현실적으로 제시문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대학마다 다소의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논술고사에 나오는 제시문의 숫자는 4~8개이다. 대체로 4, 5개의 제시문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통합교과논술이 시행되기 전의 논술고사에는 개수는 적지만 길이가 길고 동서양 고전을 비롯한 어려운 제시문이 출제되었다. 하지만 통합교과논술에서의 제시문은 일단 짧고 다양하며 교과서의 내용과 밀착되어 있다.

제시문 읽기의 실제에서 다룰 제시문은 경북대학교에서 2007년 5월 23일에 실시한 2008학년도 모의논술고사 인문사회계열 문제다. 모의논술고사에서는 다섯 개의 제시문이 나왔다. 제시문 (가)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나)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다)는 윌러스틴의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라)는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마)는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인용하였다. 다섯 개의 제시문 중에 (마)만이 교과서 지문을 가져왔지만 대학 출제위원들의 문제 분석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머지 제시문들도 거의 모두 교과서의 내용과 직결되거나 부분적으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통합교과논술 글쓰기 '논제 분석' 편에서 밝혔듯이 논제에 대한 분석은 제시문 분석을 위한 전제 작업이다. 즉, 논제 분석을 통해 제시문을 읽어가는 것이 좋은 논술문을 쓰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분량으로 제한된 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는 것이 대입논술고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이 오히려 논술문을 작성하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이 글은 제시문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기에 논제에 대한 분석은 간단하게 하면서 그 분석을 통해 제시문을 읽어가는 과정을 찾아보려고 한다.

경북대 논술은 1,400~1,600자로 통글을 쓰는 유형이다. 하지만 과거의 통글 논술과는 질문 형태가 다르다. 완성된 글을 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세 가지의 물음을 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그 세 가지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바로 경북대학교 논술문의 본론이다. 간단하게 논제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물음1) ①제시문 (가)~(라)는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단위(영역)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②기본 단위(영역)를 작은 것부터 가장 포괄적이며 통합적인 것까지 순서대로 설명해 보시오.

(물음1)을 보면 ①제시문(가)~(라)는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단위 설정에 대한 입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②를 참고하면 그 다름이 영역의 크기와 관련된 것임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제시문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영역의 크기가 논술문 작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물음2) ③제시문 (마)의 내용을 참조하여 ④(가)의 밑줄 친 주장에 대해 평가해 보시오.

(물음2)의 질문은 훨씬 단순하고 명확하다. ③제시문 (마)의 내용을 참조하여 ④(가)의 주장을 평가하라는 것이다. 평가라는 어휘가 지닌 본래 의미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지만 같은 내용이라면 구태여 이러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로 대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전제한다면 제시문 파악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물음3) ⑤제시문 (가)와 (나)는 갈등의 발생 원인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⑥각각의 관점에서 9·11 테러 사건의 발생 원인을 진단하고, 나아가 ⑦그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시오.

(물음3)이 논술문의 핵심이다. (물음1)에서 제시문 사이의 영역 차이에 대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면 여기에서는 먼저 ⑤(가)와 (나)가 갈등의 발생 원인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파악된 서로 다른 관점으로 ⑥9·11 테러 사건의 발생 원인을 진단하고 ⑦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발생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면 방안의 제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간단하지만 이러한 논제 파악은 제시문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이다. 제시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대학 측의 설명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과정을 살펴본다. 위 논제 파악을 통해 볼 때 제시문에서 찾아야 할 정보는 일단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제시문 (가)~(라)에 드러나는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단위의 크기이고, 둘째는 제시문 (가)와 (나)에 드러나는 갈등의 발생 원인의 차이를 찾는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정보를 찾아보자. 제시문 (가)는 세계가 문화와 문명의 경계선을 따라 재편된다고 하면서 종교와 문화, 문명을 단위로 삼고 있다. 불교 문화, 이슬람 문화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제시문 (나)는 모든 법률이나 국가의 형태가 물질적 생산 활동으로부터 파악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국가를 단위로 삼고 있다. 제시문 (다)는 세계경제가 단순한 국가경제의 연합이 아니며 국제적 분업의 틀을 유지하는 하나의 체제라고 말한다. 세계체제가 단위이다. 제시문 (라)는 전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권력 형태인 '제국'을 말하고 있다. 제국은 지구 전체를 통합하고 유연한 위계질서와 다원적인 교환을 관리하는, 사실상 전체 문명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이다. 실제로 (물음1)의 내용을 참조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두 번째 정보를 찾기 위해 제시문 (가)를 보면 탈냉전 시대에 가장 큰 파급력을 지닌 갈등은 사회적 계급이나 빈부 차이에서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나타난다고 한다.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투쟁은 세계 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갈등의 요인은 종교로 대변되는 서로 다른 문명이다. 제시문 (나)는 물질적 생활의 형태가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의 형태를 결정한다고 하면서 사회 갈등은 의식의 갈등이 아니라 물질적·경제적 갈등으로부터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즉 갈등의 요인을 물질적·경제적 차이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시문 (마)의 내용을 살펴본다. 제시문 (마)는 '인종 청소'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1992년 유고슬로비아 연방에서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전지구화와 상호의존성의 심화, 시민사회의 활성화 등으로 교류가 증진되고 민주화가 진척되어 다른 문명들이 서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즉 서로 다른 문명권 내부에 공통점을 확대해 감으로써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공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제시문에서는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한 여러 국가들이 어떤 세력을 지원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그것이 종교와는 별로 상관이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정도로 제시문을 분석하고 나면 개요를 작성하고 그 개요에 따라 논술문을 작성한다. 물론 논제에 따라 제시문을 분석하였기 때문에 제시문 내용 전부를 분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논술문 작성에는 이 정도의 제시문 파악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논제의 요구에 따라 논술문의 단락을 정하고 단락의 주제(주장)를 문장으로 작성한다. 그 다음에 각 주제에 적합한 나름대로의 논거를 찾아 개요에 포함한다. 이 정도만 이루어지면 논술문 작성의 90%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