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포츠 인사이드)월드시리즈와 인간승리

미국 프로야구 가을 잔치인 월드시리즈가 29일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보스턴은 29일 4차전에서 4대3으로 승리, 2004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다. 만년 하위권이던 콜로라도 로키스가 연일 기적같은 승리 행진 끝에 보스턴과 맞대결했으나 시리즈 전적 4패로 완패하고 말았다. 잔치는 끝났지만 고난을 이겨낸 선수들의 이야기는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보스턴의 주전 3루수 마이크 로웰(33)은 올 시즌 타율 0.324, 21홈런, 120타점으로 제 몫을 단단히 하더니 이번 시리즈에서 15타수 6안타(타율 0.400), 4타점, 6득점으로 맹활약하며 최우수선수가 됐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95년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됐지만 1999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 됐고 그 해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자마자 생존율이 40% 미만이라고 알려진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수술을 받은 뒤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고환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를 달성한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처럼. 2003년에는 타율 0.276, 32홈런, 105타점으로 맹위를 떨치며 플로리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5년 타율 0.236, 8홈런, 58타점으로 성적이 떨어졌고 플로리다의 에이스 투수 조시 베켓에 '덤'으로 얹혀 빨간 양말을 신게 됐다. 퇴물 취급을 당한 로웰은 절치부심, 올 시즌 보스턴 타선의 핵 매니 라미레즈, 데이빗 오티스를 제치고 팀내 최다 타점을 올리는 뚝심을 발휘했고 월드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로웰만 감동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시리즈 4차전의 선발 투수인 보스턴의 존 레스터(23)와 콜로라도의 애런 쿡(28)도 마찬가지. 두 선수 역시 로웰처럼 병마를 이겨낸 선수들이다.

레스터는 지난해 교통사고 후 정밀 진단을 받다 암(림프종)이 발견돼 선수 생명이 위태로웠지만 수 차례 항암치료를 받은 뒤 다시 일어섰다. 마이너리그에서 올 시즌을 시작했지만 7월에는 메이저리거가 됐고 보스턴이 챔피언이 된 경기에서 5와 2/3이닝 동안 3피안타 무실점으로 역투, 승리투수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한 번만 더 지면 시리즈가 그대로 끝나는 순간, 콜로라도가 믿은 것은 쿡의 어깨였다. 쿡은 2004년 8월 호흡에 장애가 왔다. 혈종으로 인한 폐색전 진단을 받은 쿡은 장시간의 수술 끝에 갈비뼈 하나를 제거했고 재수술 뒤에야 혈액 순환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년여 재활 끝에 쿡은 다시 돌아왔지만 올해 8월 다시 옆구리 부상으로 쓰러졌다.

운명의 4차전 등판이 부상 후 복귀전이어서 우려됐지만 6이닝 6피안타 3실점으로 분전했다. 7회 로웰에게 솔로 홈런을 맞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지만 콜로라도 홈팬들은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다. 모두 삶과 야구에 대한 열정, 불굴의 의지를 가진 선수들이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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