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천수호 作 '불륜'

불륜

천수호

승용차 밖의 남녀가 우리를 쳐다본다

뭐라고 수군거린다

승용차에 나란히 앉은

시인 女와 평론가 男인 우리에게

젖은 크리넥스 티슈 같은 눈길이 덮친다

그들의 입 모양으로 우리의 관계가 재구성된다

우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그가 묻는다

글쎄, 자리를 바꿀까요

차창 밖의 두 얼굴을

잘못 작동된 윈도우 브러쉬가 닦고 지나간다

우리는 그들의 눈짓으로

각자의 위치를 재편성한다

그가 운전석으로 자리를 바꿀 동안

내가 뒷좌석으로 옮겨간다

우리도 저 남녀의 행동을 지켜본다

그들의 행동이 수상해진다

눈으로 서로 간섭하는

승용차의 안과 밖

차안과 피안의 체위, 체위를 바꾸는

두 세계가 유리창에 집약된다.

두 겹의 시선이 존재한다. 차 안의 시선과 차 바깥의 시선. 두 시선이 얽히면서 쾌와 불쾌가 자리를 바꾼다. 체위를 바꾼다. 시와 예술의 高談(고담)은 한순간 사라지고 어색한 헛기침만 좁은 차를 채운다. 경계란 그런 것이다. 남녀관계란 그런 것이다. 작은 오해에도 차안과 피안, 천당과 지옥이 오갈 수 있는 법.

불륜! 아침 드라마 탓인지 이 말은 요즘 근수가 너무 나간다. '불륜'이라는 말은 '비윤리'란 말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젖은 크리넥스 티슈 같은 눈길'인가. 왜 '잘못 작동된 윈도우 브러쉬'이며 '체위'인가. 아하, 알겠다. 집단 관음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건네는 짓궂은 농담이 아닌가, 이 시는.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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