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이상한 계절

孔子(공자)의 제자 曾子(증자)가 병이 들어 누웠을 때 증자를 사사했던 孟敬子(맹경자)가 병문안을 갔다. 증자가 말했다. '새가 장차 죽을 때는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鳥之將死其鳴也哀/ 人之將死其言也善:論語 泰伯 중 曾子의 말). 이 말을 지금 한창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에 빗대어 이렇게 말해도 재미있을 듯하다. '나뭇잎은 장차 죽을 때 그 빛깔이 아름다운 법'이라고,

봄날의 연두 새순은 귀엽고, 여름날의 싱그러운 잎사귀는 청춘의 열정을 닮았다. 이 세상 모든 초목이 초록 일색인 것은 그것이 우리 눈을 가장 덜 피로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만약 지상의 뭇 나무들이 일년 내내 늘 푸른 상록수뿐이라면 참 지겹지 않을까. 때가 되면 잎 지는 것도 있고, 이파리 색깔이 바뀌는 것도 있어야 보는 즐거움, 사는 재미가 더 풍성할 것 같다.

단풍철이다. 울긋불긋한 차림에 륙색을 멘 단풍 여행객들을 도처에서 보게 된다. 이맘때면 한국에서 사는 게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거주 동남아나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 중에는 난생 처음 단풍을 본다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하긴 같은 온대권이라도 영국처럼 안개가 많이 끼고 일조량이 적은 나라에서는 단풍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처럼 곱게, 색색깔로 화려하게 단풍 지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쭙잖게도 때때로 나무에게 질투를 느낀다. 거친 풍우의 세월을 참고 견뎌온 큰 나무들, 그들의 격조 높은 기품이 부럽다. 한가득 품어 안은 열매와 잎들을 때맞춰 미련없이 떨구는 비움의 지혜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또한 아름다운 단풍의 추억을 선물로 남기고….

가을은 확실히 멜랑콜리한 계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기 앓듯 살짝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다. 법정스님은 가을 나무들을 '푸른 하늘 아래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이라고 안쓰러워했다. 어쩌면 지금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나무들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법정 스님은 가을을 '이상한 계절'이라고도 했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 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중). 나무에게조차 질투를 하게 만드는 걸 보니 확실히 가을은 이상한 계절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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