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死海(사해) 서남 연안의 고대 가나안 땅에 있었다. 두 도시는 뒤에 큰 지진에 의해 땅이 내려앉고, 석유가스로 화염에 휩싸여 사해 수중에 침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서 '창세기'는 신의 축복으로 풍족한 생활을 해오던 두 도시가 시간이 지나면서 타락과 탐욕에 물들어 '여호와께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사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는 내용으로 기록된다.
몇 년 전부터 이 소돔과 고모라를 빗댄 말이 대구의 수식어로 들어붙어 지역민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있다. 소위 '고담 대구'다. 고모라의 '고'와 소돔의 '돔'을 미국식으로 발음하여 고담이다. 영화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무대로 부패와 탐욕, 범죄로 물든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고담 대구는 상인동 지하철 참사와 중앙로역 방화사건 이후 인터넷상에 떠돌기 시작해 몇 가지 엽기 범죄가 덧붙으면서 통용어로 굳어졌다. 물론 유언비어다.
과연 대구만 고담일까. 차라리 그랬으면 다행일 수도 있다.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뉴스들을 보면 나라 전체가 고담으로 치닫고 있다.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신정아 사건이 無恥(무치)와 惡臭(악취)의 단초를 열었다. 여기서 터져 나온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비자금 사건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사건은 정상곤 전 부산지방 국세청장에서 전군표 국세청장에게로 비화됐다. 권력의 심장까지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무치, 악취도 오십보백보다. 신성한 국감을 피감기관들의 향응잔치로 만들어 도덕성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하라는 국감은 안 하고 대통령 선거의 유세장으로 만든 것도 그들이다. 한쪽에선 히틀러, 한쪽에선 패륜아로 맞받아치며 장군 멍군하고 있다. 아무리 목숨이 걸린 일이라지만 욕설과 막말로 어린아이들 앞에서까지 발가벗고 설친다. 이회창 씨가이 난장판에 끼어들어 정치 혐오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나라의 어른도 없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욕도 그렇거니와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형제 간의 재산다툼으로 국민들의 한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세대 총장은 부인의 편입 청탁 대가 거액 수수 의혹으로 중도 낙마했고, 중앙대 총장은 선거 캠프에 뛰어들어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연예인 박철과 옥소리 부부의 진흙탕 이혼다툼은 못 볼 것을 본 느낌이다. 잠자리 숫자까지 들먹이며 기자회견을 하는 그 모습에 현기증이 일어날 뿐이다. 경찰에 적발된 의사, 군인, 자영업자 등 48쌍의 스와핑 모임은 이 사회가 구석구석 썩어있음을 보여준다. 법만 어기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뻔뻔스러움이 사회 전체에 넘실댄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잘못된 국민교육이다. 역대정권들이 사교육비나 교육평등이란 기능만 생각했지,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은 탓이다. 그 결과로 예의염치를 모르는 인간들이 양산됐다. 인간주의의 붕괴, 가족의 해체, 사회의 혼돈이 이어졌다. 인간교육이 사라지면서 삶의 가치는 충동으로 치닫고, 그것이 가족의 울타리를 무너뜨렸다. 급기야 사회의 규범과 질서가 해체되면서 오늘날의 고담 한국이 연출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민주주의의 다양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 일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예의염치를 모르는 사회에서의 다양성은 타락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까지 상실케 하는 지금 상황은 다양성 차원을 넘어섰다. 모두가 길을 잃고 뿔뿔이 황야를 헤매는 꼴이다.
아무리 늦어도 답은 교육 곧 인간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역사가 제시하는 평범하지만 확실한 가르침이다. 현재의 공교육을 혁파하여 최소한 우리 삶이 추구하는 기본적 가치는 확보해야 한다. 나라의 모든 집단은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의 생존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생각해 봐야 할 계제다. 종교인, 교사, 지식인들은 그 길을 안내할 특별한 책임을 갖는다. 국민의 역할 모델이 지금만큼 절실한 때가 없다.
朴珍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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