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의 단상] 이삭줍기

"6학년 1반, 앞으로 나란히, 좌향좌, 우향우" 일학년에서 6학년까지 올망졸망한 애들을 실에 구슬 꿰듯 엮었습니다. "왼발부터 하나 둘 하나 둘, 논두렁 앞으로 가" 두 줄로 늘어선 대열이 행군을 시작합니다. 위풍당당한 출정부대입니다. 선두에 선 5학년, 6학년 아이들은 중무장을 합니다. 자기 키 만큼 긴 낫자루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웁니다. 행여 다칠세라 날을 새끼로 칭칭 동여매어 칼집처럼 만듭니다. 대오 가운데의 3학년, 4학년들은 꼬깃꼬깃 접은 빈 비료포대를 왼쪽 옆구리에 낍니다. 마치 방패 같습니다. 철모르는 1학년, 2학년들은 신바람이 납니다. 들판 나들이가 처음이라 형들과 함께하는 기차놀이에 마냥 즐겁습니다.

"낫든 애들은 조심해라, 장난치지 말고" 선생님의 주의사항이 하달됩니다. "6학년은 오른쪽, 5학년은 왼쪽, 4학년은 5학년 뒤로, 3학년은 6학년 뒤로" 신속히 인원배치를 합니다. "작업개시!" 고사리 손에 들린 낫자루가 마술을 부립니다. 마치 한잠 잔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황금빛 들판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고학년을 뒤따르던 3, 4학년들은 베어진 벼를 단으로 묶습니다. 다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입니다.

농번기 가정실습을 나온 것입니다. 손이 농사도구의 전부이던 시대입니다. 모내기나 추수 때가 되면 집집마다 일손이 모자랍니다. "오늘 벼 벤다." 아버지의 한마디면 그날은 들판으로 등교해야 합니다. 춥고 배고픈 겨울이 현실이었던 시절, 학교는 그 다음 순서입니다.

"자, 1, 2학년 모여라" 천방지축 뛰어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옵니다. "옆으로 나란히" 논두렁 어귀에 횡대로 길게 줄을 세웁니다. "뛰지 마라, 밟는다." 이삭줍기를 시작합니다. 늦가을 추수에 떨어진 알곡도 많습니다. 마치 보물을 찾듯 떨어진 이삭을 주워 비닐포대에 담습니다. 고사리 손이 거둬들인 이삭이 제법 많습니다. 들쥐 녀석들이 물어가기 전에 빨리 주워야 합니다. 이삭은 전리품입니다. 팔아서 모은 돈은 불우이웃돕기에 쓰기도 하고, 학급비품을 사기도 합니다.

35개월 된 딸아이가 제 흘린 밥알을 주워 입에 넣습니다. 앙증맞은 손이 너무나 예뻐 눈물이 다 납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이삭줍기를 가야겠습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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