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눈물 많고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다. 아동 문학가 서정오 선생은 "선생님은 작은 이야기에도 눈물을 흘렸고, 수줍음이 많아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한국아동문학상'을 타게 됐을 때는 시상식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보다 앞서 당선된 신춘문예 시상식에도 가지 않은 터였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억지로 끌다시피 하여, 검정고무신을 신고 식장에 간 선생은 진심에서 우러난 연설로 모인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옷차림이 워낙 남루해 한 양복점 주인이 양복 한 벌을 선사하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거절하셨지요. 무엇도 받으려 하지 않은 분입니다."라고 전한다.
일직교회 이창식 목사는 "독자들이 집으로 찾아가서 '권정생 선생님'하고 부르면 안에 계시면서도 대답을 않으셨어요. 몸이 불편하신데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지요."라고 전한다.
그러나 선생이 사람을 마냥 피한 것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인들의 방문을 즐겁게 여겼다. 이웃집 딸의 혼사를 걱정했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아들의 효심을 칭찬했고, 학교를 졸업한 동네 청년의 장래를 걱정하는 말씀도 자주 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도 좀처럼 방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워낙 방이 좁았기 때문이다.
이웃에 사는 김민경씨는 "선생님는 늘 오줌주머니를 차고 다니셨지만 승용차로 모시려하면 극구 사양하셨어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그 불편한 몸으로 굳이 버스를 고집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선생님은 집에서 만들어 드리는 음식은 고맙게 받으셨지만 사서 드리는 물건은 한사코 거절하셨다."고 덧붙였다. 권정생 선생은 평생 자신을 위해 계절별 옷 한벌과 고무신 하나로 살았고, 또한 타인이 선생을 위해 수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생은 평생을 지긋지긋한 병마와 함께 살았지만 얼굴은 어린 아이처럼 맑았어요. 맑은 생각만 하시니 얼굴이 맑을 수밖에 없었지요. 저는 명색이 교회 목사이지만 선생님 만큼 하지는 못해요. 감히 드리는 말씀이지만 선생님은 목사들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삶을 사셨어요. 유머 감각도 대단하셨습니다. 같은 말씀을 하셔도 무척 재미있게 하셨지요." 일직교회 이창식 목사가 전하는 말이다.
△ 권정생=권정생 선생은 1937년 9월 10일 일본 도쿄의 헌옷 장수 집 뒷방에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친구들이 학교에 간 뒤로 홀로 골목에 남아 친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건너왔지만 빈곤으로 가족과 곧 헤어졌다. 어릴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 장수, 신문배달원, 서점점원, 재봉틀 수리공으로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았다. 열 여덟에 전신결핵이라는 큰 병을 얻었다. 1967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해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 살면서 종지기 노릇을 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으로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의 길을 걸었다. 1971년 '아기양의 그림자 딸랑이'로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됐다. 또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됐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 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빌뱅이 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았다. 저서로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한티재하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깜둥바가지 아줌마'와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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