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캠피온 감독의 작품 '피아노'는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말이다. 베인스(하비 키이틀)와 섹스를 하고 난 후 집에 돌아 온 에이다(홀리헌터)는 침대 위에 누워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다. 왼쪽으로 누웠다, 돌아누웠다, 고개를 들거나 내리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그녀의 행동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가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은 누구의 시선일까? 그 시선이 바로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의 것, 그 눈빛의 반영이다. 그러니까 에이다는 사랑하는 남자, 베인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쳤을 지를 유추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화 '피아노'에는 여성에게 다가가는 두 가지 대조적인 접근법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는 남편, 스튜어트(샘 닐)의 방법이다. 스튜어트는 그녀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자기 마음대로 그녀를 움직이려 한다. 물론 억압적인 방식으로 그녀에게 횡포를 부린다거나 가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그저 그녀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예 언어나 내면, 욕망 따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않는다. 너무도 당연히, 그는 에이다에게 피아노가 어떤 의미인지, 그녀가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아니 에이다의 내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한 밤 중 에이다는 피아노를 치며 잠꼬대를 한다. 그녀의 딸은 그녀가 혼몽 중에 연주하는 피아노곡을 몽유병이라고 설명해준다. 이 장면은 피아노가 곧 에이다의 언어이자 언어로 빚어진 영혼임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피아노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피아노를 내다 버리리고 만다. 같이 잠자고, 밥먹고, 섹스하는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남자 스튜어트에게 에이다의 언어는 들여다볼 가치가 없다. 돌아보면 놓여 있는 가구처럼 그저 그녀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지 않는 가구로 여겼던 그녀가 스스로 집밖으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남편이 버린 피아노를 비싼 값에 사준 남자, 베인스를 찾아간다. 그녀는 이 행로가 단지 그녀의 피아노 즉 언어를 되찾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그녀의 영혼을 읽어내고 감정을 이해한다. 베인스는 에이다의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랑한 것이다.
이제, 에이다는 언어와 욕망을 가진 주체로 거듭난다. 문제는 남편 스튜어트가 원한 여자는 무거운 가구처럼 붙박이로 자리잡고 있는 '사물'이지 언어와 욕망을 지닌 인격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변주되는 샤를르 페로의 동화 '푸른수염'은 스튜어트의 감정이 소유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스튜어트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독점하고자 했기에 그녀를 괴롭히고 상처입힌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에이다는 결국 스튜어트로부터 벗어나 베인스와 함께 떠나게 된다. 에이다는 좁은 배에 피아노를 싣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급기야 피아노는 바다 속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피아노와 함께 수장되고 싶어하는 에이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밧줄에 자신의 발을 집어 넣는다. 하지만 그녀는 마침내 그 줄을 풀고 베인스의 품으로 되돌아온다. 사랑은 자신의 언어를 이해해주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자신의 언어를 버리는 데서 완성된다. 영화 '피아노'에는 나에서 시작해 너로 끝나는 사랑의 깊은 속내가 들어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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