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부 아파트 '깜깜이 분양' 준비 논란

'아파트 분양 알려서 좋을 것 있나요(?)'

연말 아파트 신규 분양에 나서는 주택업체 중 일부가 '깜깜이 분양'을 준비 중이다.

'깜깜이 분양'이란 말 그대로 기존 상식을 깨고 수요자들 몰래 분양에 나서는 것. 건설사들이 주택법상 규정된 공급 규칙에 따라 분양 승인과 공고, 공개 청약 등 절차를 진행하면서도 마케팅 활동은 의도적으로 자제해 수요자들이 가급적 분양 사실을 모르게 분양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상 청약 대신 선착순 분양이 더 효과적인 경우에 사용되는 방식으로 지역에서 이같은 분양방식이 등장하는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원래 정상 분양에 나서봤자 어차피 청약 통장을 사용하는 수요자가 거의 없어 원하는 동·호수를 지정할 수 있는 선착순 분양 때 대대적인 판촉을 통해 계약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 깜깜이 분양이지만 올 연말에 이뤄질 깜깜이 분양은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소낙비는 피해야죠

"분양가 상한제에 걸리지 않기 위해 떠밀려 분양 절차를 준비중이지만 지금 분양을 해봤자 몇 명이나 계약을 하겠습니까".

내달 대구에서 대단지 분양을 준비 중인 1군 건설사의 한 임원은 '깜깜이 분양'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이 임원은 "신규 분양에 나선 단지마다 줄줄이 미분양 사태를 빚고 있는데다 전통적인 분양 비수기인 연말에다 대선까지 있어 정상 분양이 되겠느냐"며 "내년 2, 3월부터 대대적인 판촉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해당 구청으로부터 분양 승인을 받은 뒤 분양 공고를 내고 청약은 받지만 광고나 전단 배포 등 일상적인 광고 계획은 일절 잡지 않고 있다.

실제 타지역에서 '깜깜이 분양'을 한 일부 업체들의 경우 법적으로 일간 신문 1곳에 게재하게 돼 있는 '입주자 모집공고를 영자신문이나 군소 신문에 낸 뒤 당첨 추첨 및 계약을 하루 동안만 진행, 사실상 정상 계약이 불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깜깜이 분양'을 준비중인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분양 승인을 받은 뒤 사전 계약 의사를 밝힌 일부 고객만을 상대로 모델하우스를 부분 개방한 뒤 내년 초까지는 모델 하우스 문을 닫을 예정"이라며 "최소한 내년이 현재보다는 상황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즉 올 연말 정상 분양에 나섰다가 계약률이 바닥을 칠 경우 '미분양 단지'로 낙인찍혀 향후 마케팅이 더욱 어려울 수도 있어 차라리 내년 초에 '신규 오픈 단지'로 포장해 분양에 나서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다.

한편, 깜깜이 분양에는 연말,연시 집중되는 건설사들의 임원 인사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상 분양을 했다 계약률이 떨어지면 인사에 불이익을 받는 만큼 면피용으로 '깜깜이 분양'을 한 뒤 인사가 끝난 뒤 분양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실제 대기업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상한제 피하기 위한 편법 논란도

깜깜이 분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반 수요자 입장에서는 '분양 정보'를 전혀 접할 수 없는데다 내년 이후 '그랜드 오픈' 등의 문구로 본격 마케팅에 나설 경우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로 인정(?) 받을 여지가 높은 탓이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들은 "분양가 상한제 이전에 고분양가로 승인을 받은 뒤 내년 초 재오픈에 나서면서 각종 조건 할인 등에 나서면 소비자들은 상한제 적용 가격에서 할인 분양에 나서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며 "사실상 상한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 분양"이라고 밝혔다.

실제 깜깜이 분양을 할 경우 분양 승인 신청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언론이나 여론의 '고분양가' 비난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

이에 따라 올 연말 이전 분양에 나설 단지가 대구 지역에서만 5~7 곳에 이르고 있지만 절반 정도가 '깜깜이 분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역 건설사 한 임원은 "대선 결과에 따라 내년 봄 분양 환경이 좋을 수도 있지만 워낙 미분양 물량이 많고 기존 아파트 거래도 갑자기 살아나기가 힘들어 현재보다 분양 환경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며 "역외 1군 업체들이 준비중인 고분양가 단지일수록 깜깜이 분양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부터 청약 및 계약 결과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는 인터넷 청약이 시행되면서 '깜깜이 분양'을 해봤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식 편법밖에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늘어나는 미분양에 내달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분양가 상한제. 주택업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깜깜이 분양'이 올 연말 분양 시장의 또 다른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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