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배신과 양심선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시험을 볼 때 반드시 자기 옆자리에 또 한 명의 외부 면접관을 앉혔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관상가였던 白(백)모 씨였다.

신입사원 면접시험장에 난데없는 觀相家(관상가)를 동석시킨 이유는 단 한 가지. '입사 후에 회사를 배신할 관상인가 아닌가'를 가려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말단 사원 하나 뽑는데도 회장 자신이 직접 면접을 보고 그것도 못 미더워 관상가까지 모셔다 背信(배신)과 不德(부덕) 여부를 살펴본 것은 인재 선택 기준에서 학력이나 지식보다도 인간성에 더 무게를 두려했음을 보여준 일화다.

그의 그러한 인간중심의 경영 철학은 훗날 그의 기업 안에 속칭 '삼성맨(man)'이라는 이름의 자부심과 전통을 뿌리내려 왔다. 바로 그 삼성이 그룹에서 퇴직한 어느 변호사의 자칭 양심선언 폭로로 곤경에 빠졌다. 삼성그룹이 전방위 로비에 수천억 원을 뿌렸다는 폭로다. 덩달아 떡값을 받았다는 법조인들의 명단까지 폭로될 판이다. 그의 양심선언 폭로가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의문은 여러 가지다.

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누릴 것 누린 옛 직장의 비밀을 폭로했을까. 재벌의 조직적 부패와 불의가 참을 수 없어 폭로했다면 왜 회사에 몸담고 있었을 당시에는 폭로하지 않다가 옷 벗고 나온 뒤 먹던 우물에 침을 뱉을까. 혹 변호사 개업 후 옛 직장인 삼성에서 법무일거리를 충분히 안 챙겨줘서 섭섭해서였을까.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옛 직장을 치지 않으면 안 될 약점이라도 잡혀 재벌 공격 무기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떡값 받았다'는 판검사들이 자신의 변호나 수임 사건을 냉대라도 해서였을까.

그 어느 것도 호기심 수준의 추측일 뿐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의 폭로가 양심선언이냐 배신이냐는 線(선)을 긋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목적과 意圖(의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폭로의 목적이 순수한 부패 척결이라면 말 그대로 정의로운 양심선언이고 폭로 의도에 이기적 惡意(악의)가 있었다면 배신이 된다.

삼성으로서는 배신이라는 심경이 들 수도 있고 당사자로서는 양심적 정의 구현이라고 말할 것이다. 본란에서 삼성 로비 의혹 폭로 논란을 말하는 것은 때마침 국세청장 상납 의혹, BBK 의혹, 한나라당의 '검은 수첩' 의혹 등 옛 조직의 내부 비밀이 바깥으로 들춰지는 강퍅한 '세태'를 곰곰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다. 우선 조직 내부나 동업자의 사업 비밀 폭로가 양심선언의 정의냐 인간적 배신이냐 하는 갈등이다.

내부 폭로가 많은 사회가 깨끗한 사회냐 아니면 그런 폭로를 인간적 배신으로 느끼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냐는 것은 매우 애매한 문제이긴 하다. 조직 내부의 비리나 비밀을 인간적인 것만 따지며 덮어가거나 가슴에 묻어주고 가면 그 조직은 깨끗한 날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폭로와 양심선언이 많은 사회가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부끄러운 내부 비밀을 서로가 안 만들어내는 노력은 없이 부패를 동조'방관해오다 제 잇속이 관계되거나 수틀릴 때 가서 터뜨리는 類(류)의 폭로는 배신으로 느끼는 게 감성적으로 더 건강한 사회다.

그런 잣대로 볼 때 삼성그룹 로비 의혹 폭로도 폭로 사실 내용의 진실 캐내기도 중요하지만 폭로의 이유와 목적, 폭로자의 의도도 깊이 살펴야 한다. 이명박 후보의 BBK(동업자끼리의 비리) 의혹, 이회창 씨의 대선잔금이 적혔다는 '검은 수첩' 같은 옛 정치 동지 간의 숨은 의혹도 마찬가지다.

의혹 제기의 반복 효과에 세뇌되기 전에 의혹 제기의 배경과 의도를 짚어볼 수 있는 깨이고 성숙된 사회가 될 필요가 있다. 폭로 목적과 동기의 부도덕이 폭로 내용의 부도덕함보다 더 클 때는 그 폭로는 양심선언이 아니라 배신으로 매김해야 한다. 그런 건전하고 공정한 공감대가 이뤄질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질 수 있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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